-기권 시점에 따라 평균타수 반영 결정
-2라운드 종료 후 관둬 2위 최혜진과 0.0599타 차이 초접전
-프로농구 기록 밀어주기 추태로 얼룩
-프로야구 기록 관리 끊이지 않아
-테드 윌리엄스는 마지막 타석까지 지키며 4할 돌파
‘핫식스’ 이정은(22)은 지난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사상 첫 6관왕에 올랐다. 대상, 다승(4승), 상금(약 11억4900만 원), 평균타수(69.80타) 등 주요 부분을 싹쓸이했다. 개인 타이틀 가운데 가장 애착이 많은 건 평균타수다. 이정은은 “평균타수가 적다는 건 그만큼 우승 기회가 많다는 의미다. 고르게 잘해야 한다. 종합선물세트 같다”고 말했다. 2년 연속 지키고 싶은 타이틀로도 평균타수를 첫 손에 꼽기도 했다.
이번 시즌에도 평균타수 1위를 유지하던 이정은은 8일 경기 여주 블루헤런골프장에서 끝난 KLPGA투어 시즌 네 번째 메이저대회인 하이트진로챔피언십에서 2라운드를 마친 뒤 기권했다. 태풍 영향으로 거센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3번 홀에서 4번홀로 이동하다 내리막 카트 도로의 과속 방지턱에 칠한 페인트 부분을 밟았는데 너무 미끄러워 중심을 잃었다. 넘어지면서 무릎을 부딪쳤고 오른쪽 손목으로 지면을 짚다 부상을 입었다.
이정은은 이후에도 플레이를 강행해 78타로 경기를 마쳤다. 당시 부상 현장을 지켜본 한 관계자는 “경기를 계속하면서 정상적인 플레이가 힘들어졌다. 샷 할 때마다 통증을 느껴 심리적인 부담이 생긴 것 같았다”고 전했다.
만약 이정은이 2라운드 도중 경기를 포기했다면 그의 기록은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해 시즌 평균타수 계산에도 영향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정은은 이날 18홀을 다 마치고 스코어카드를 제출한 뒤 기권을 해 평균타수를 갉아먹게 됐다. 지난주 69.5763타로 1위였던 이정은의 평균 타수는 하이트진로 챔피언십 종료 시점에는 69.8728타로 올라갔다. 여전히 1위를 지키고 있지만 2위 최혜진(69.9327타)과의 격차는 0.2511타에서 0.0599타로 줄어 시즌 막판 초접전 양상이 됐다. 결과론이지만 만약 이정은이 부상 직후 기권했다면 최혜진과 격차는 0.3564타로 더 벌어질 수 있었다.
이정은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고 있는 크라우닝 김정수 대표는 “평균타수를 관리한다는 의심을 받기 싫어 이정은 프로가 끝까지 완주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이정은 역시 “다친 뒤 바로 기권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메이저 대회였기에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평균타수 기록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대회에도 여러 차례 출전하느라 KLPGA투어 출전 대회수가 적었기에 기권으로 괜한 구설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정은은 이번 시즌 15개 국내 대회에 나서 보통 20개 이상을 소화한 다른 선수들보다 출전 대회수가 적다. KLPGA투어 규정에 따르면 상금 랭킹은 전체 대회(28개)의 30%, 평균타수는 50% 이상(14개 대회)만 출전하면 기록으로 인정받는다.
KLPGA 한 관계자는 “일부 상위권 선수들이 스코어가 안 좋을 경우 기록 관리를 위해 부상 등을 이유로 고의 기권했다는 의혹을 사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기록상을 폐지했던 프로농구
기록을 다투는 스포츠 세계에서는 때론 개인 타이틀을 향한 과열 경쟁이 도마에 오르기도 한다.
국내 프로농구에서는 2003~2004시즌 정규리그 마지막 날 경기가 기록 밀어주기 추태로 얼룩진 적이 있다. 당시 전자랜드 문경은(현 SK 감독)은 TG삼보와의 경기에서 역대 최다인 3점슛 22개 터뜨리며 66점을 퍼부었다. 하지만 모비스 우지원도 같은 날 3점포 21개에 70점을 터뜨려 3점슛 1위를 차지했다. 2년 연속이자 통산 4번째 3점슛왕을 노렸던 문경은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당시 문경은, 우지원의 3점포 폭발은 상대 팀의 느슨한 수비가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승패에 큰 의미가 없던 경기였기에 상대 팀 선수의 기록상 도전에 고춧가루를 뿌리지 않겠다는 그릇된 동업자 정신이 작용했다. 당시 TG삼보 김주성은 전자랜드전에서 블록슛을 11개나 하며 국내 선수 첫 블록슛왕에 트리플더블까지 했다. 문경은이 뛴 전자랜드와 모종의 거래를 했다는 의혹이 나올 만 했다.
영광스러워할 기록상이 민망한 지경에 이르게 되자 한국농구연맹(KBL)은 기록에 따른 시상을 중단하기까지 했다.
●기록 관리로 만든 타격왕 논란
프로야구에서 타율은 일단 규정 타석만 채우면 시즌 막판 얼마든지 관리가 가능하다. 타격왕 안정권에 들어간 경우 감독은 포스트시즌 대비나 컨디션 난조 등을 이유로 해당 선수를 더그아웃에 줄곧 앉혀놓는 경우도 있다. 타율을 까먹지 않게 할 의도다.
1984년 삼성 이만수는 정규시즌 2경기를 남긴 시점에서 타율 0.340으로 2위 롯데 홍문종(0.339)에 불과 1리(0.001) 차이로 쫓겼다. 묘하게도 삼성의 마지막 2경기 상대는 롯데였다. 당시 김영덕 삼성 감독은 롯데와 2경기에 이만수를 출전시키지 않았다. 대신 홍문종을 9타석 연속 고의 볼넷으로 걸렀다. 이만수는 홈런, 타점에 이어 타율까지 1위에 이름을 올리며 국내 최초 타격 3관왕에 올랐지만 기록을 위한 기록이라는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정규시즌 최우수선수는 롯데 최동원에게 돌아갔다.
2009년 LG 박용택과 롯데 홍성흔의 타격왕 경쟁도 막판까지 뜨거웠다. 시즌 마지막 맞대결을 앞두고 타격 1위 LG 박용택의 타율은 0.374, 2위 롯데 홍성흔은 0.372였다. 당시 LG 김재박 감독은 박용택을 뺐다. 그리고 홍성흔을 4연타석 볼넷으로 걸렀다. 결국 박용택(0.372)은 0.001 차로 홍성흔을 제치고 타격왕이 됐지만 오랜 세월 비난 여론에 시달렸다.
미국 메이저리그 테드 윌리엄스(보스턴)는 1941년 시즌 마지막 날 연속 경기를 앞두고 타율 0.3995를 기록하고 있었다. 반올림하면 4할이었다. 타석에 나가지 않아도 11년 만에 4할 타자가 될 수 있었다. 게다가 감독에게 굳이 출전할 필요가 없다는 권유까지 들었다.
하지만 윌리엄스는 마지막 경기에 출전하지 않으면 진정한 4할 타자가 되지 않는다며 출전을 강행했다. 마지막 2경기에서 8타수 6안타. 시즌 타율 0.406은 그렇게 탄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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