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 이태양(28)은 전도유망한 선발투수였다. 2010시즌 신인 2차드래프트 5라운드(전체 36번) 지명을 받은 뒤 지난해까지 선발로 68경기, 구원으론 39게임에 각각 등판했다. 풀타임 선발투수로 자리 잡은 2014시즌부터 지난해까지 등판한 75경기 중에선 62게임이 선발등판이었다. 간간이 롱릴리프로 나서기도 했지만, 필승계투요원이라는 이미지는 사실상 없다시피했다.
그러나 2018시즌을 통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는 철벽불펜 이태양이 더 익숙하다. 9일까지 올 시즌 62경기에 모두 구원 등판해 4승2패12세이브, 평균자책점 2.72(79.1이닝 24자책점)의 성적을 거뒀다. 기본 기록뿐만 아니라 삼진(85개)-볼넷(23개) 비율과 피안타율(0.222), 이닝당 출루허용(WHIP·1.11), 기출루자 실점률(0.237) 등의 세부지표를 보면, 얼마나 안정적인 필승계투요원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 실제로 계투진 평균자책점 1위(4.22)에 빛나는 한화의 철벽 불펜을 이끈 주인공이 바로 이태양이다.
● 어떻게 철벽불펜으로 변신했나
직구(포심패스트볼)와 포크볼, 슬라이더, 커브의 다양한 구종을 지닌 터라 선발로 활약하기에 손색이 없다. 올 시즌을 앞두고도 선발투수 후보 가운데 한 명으로 손꼽혔다. 그러나 한화 한용덕 감독과 송진우 투수코치의 생각은 달랐다. “(이)태양이가 시범경기 때 도망가는 투구를 하길래 2군에 보낸 적이 있는데, 서산에서 팔스윙을 보완한 뒤부터 몰라보게 좋아졌다. 기존에는 기술보다 힘에 의존하는 투구를 하다 보니 큰 키(192㎝)와 하드웨어의 장점을 살리지 못했다. 한계치에 다다르면 구속이 줄어들었다.” 한 감독의 회상이다.
발상의 전환이 통했다. 투구수가 늘어나면 구속이 줄어드는 단점을 오히려 역이용했다. 한 감독은 “그래. 압축시켜서 짧게 던지는 게 좋겠다. 다른 쪽으로 에너지를 소모하자”고 판단했다. 그렇게 보직을 바꿨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지금은 자신감이 가득하다. 이태양은 “오히려 2014시즌과 비교해 지금 밸런스가 좋다고 느낀다. 그만큼 자신감도 커졌다”고 했다.
● 마음가짐과 왼발이 만든 변화
한 감독은 이태양의 올 시즌 준비 과정을 돌아보며 “축이 되는 왼발이 흔들리면서 체중이동에 어려움을 겪더라”고 했다. 송 코치가 이태양에게 “왼발이 무너지면서 컨트롤이 안 되니 그 부분에 신경을 쓰라”고 주문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태양은 이들의 조언을 허투루 듣지 않았다. 자세만이라도 잡아보자는 생각으로 버텼다. ‘철벽 불펜’으로 다시 태어난 과정 가운데 하나다. 이태양은 “왼발로 버티는 힘이 생기니 모든 밸런스가 좋아졌다. 왼발이 무너지면 힘을 쓸 수가 없는데, 버티는 방법을 터득하니 잘되더라. 불펜은 마운드에 오르면 길어야 2이닝, 짧으면 한 타자라고 생각한다. 정타만 맞지 말자는 생각으로 자신 있게 던지다 보니 결과도 좋다”고 설명했다.
올 시즌 한화 마운드를 설명하는 키워드는 ‘성공체험’이다. 약하다고 평가받던 투수들이 중요한 순간 마운드에 올라 상대 타선을 봉쇄하며 자신감을 키운 것이다. 이태양도 올 시즌 내내 성공체험을 하며 리그에서도 손꼽히는 필승계투요원으로 올라섰다. “나도 버티는 힘이 있구나. 버틸 수 있겠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마운드에 오르는 게 재미있다.” 마음가짐의 변화가 가져온 효과는 엄청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