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벤투(49), 어느새 친숙해진 이름이다. 이름뿐 아니다. 무뚝뚝한 표정과 진중한 기자회견 스타일도 이젠 낯설지가 않다. 두 달 전 대한민국축구를 이끌 사령탑으로 확정됐을 때만 해도 반향이 크지 않았던 지도자다. 하지만 지금은 시나브로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한국축구는 그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경기내용을 끌어올려 국가대표팀의 브랜드 가치를 높였다. 그 대표팀을 팬들이 찾는다. 4경기 연속 만원관중이다.
벤투의 전술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2018러시아월드컵을 통해 우리가 가장 안타까워했던 건 한국적인 축구, 즉 우리만의 색깔을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잡는 게 최우선이었다. 그 막중한 책임을 벤투가 떠안았다. 그는 “멀리, 길게 내다보고 가겠다”고 했다.
지휘봉을 잡은 벤투는 A매치 4경기를 치렀다. 9월 코스타리카(2-0 승)와 칠레(0-0 무), 10월 우루과이(2-1 승)와 파나마(2-2 무)를 안방으로 불러들였다. 2승2무로 패배가 없다. 시행착오 속에서 벤투의 철학은 폭넓게 전파됐다.
크게 4가지 정도가 눈에 띈다. 안정된 후방 빌드업과 간결한 원터치 패스, 다양한 공격루트, 노련한 경기운영 등이다. 우리가 몰랐던 내용이라기보다는 그 가치를 벤투가 일깨워주고 있다는 게 정확할 듯하다.
빌드업의 경우 지도자마다 생각이 다르다. 벤투는 철저히 최후방부터 만들어가는 걸 원한다. 그러다보니 선수들의 볼 컨트롤 능력이 요구된다. 세밀한 패스로 상대의 압박을 벗겨내고, 그걸 통해 찬스를 만들면서 경기를 지배하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하지만 골키퍼가 볼을 잡았을 때, 그리고 그가 패스할 곳을 찾을 때는 보는 내가 불안했다. 러시아월드컵을 통해 최고 스타로 떠오른 조현우(대구)도 허둥댔다. 후방 빌드업이라는 틀 속에 녹아들지 못한 것이다. 또 동료들이 골키퍼나 수비수에게 백패스를 할 때도 아찔했다. 실수는 곧바로 실점으로 이어진다. 특히 상대 공격수가 강한 압박을 가할 때는 더욱 혼란스럽다. 아직 우리 몸에 익숙지 않은 게 사실이다. 안정 단계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간결한 원터치 패스 또한 후방 빌드업의 중요한 요소다. 볼이 머물면 상대의 압박이 몰려온다. 볼을 끄는 걸 최대한 자제하면서 팀플레이를 해야 한다. 반드시 전방패스만 고집하는 건 아니다. 백패스도 허용된다. 대신 공격의 동력을 얻을 수 있는 백패스여야 한다. 또 정확해야한다. 우루과이전에서 보여준 패스템포와 정확성은 칭찬 받을만했다. 반면 파나마전에서는 패스미스가 잦았다.
벤투는 기본적으로 공격지향적이다. 공격은 공격수만의 몫은 아니다. 그가 선호하는 것 중 하나는 양쪽 윙 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후방 빌드업 과정에서 윙 백은 상대 측면 깊숙이 올라가 기회를 노린다.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작전이다. 물론 측면 공격수와의 호흡이 중요하다. 서로가 빈 공간을 커버해줘야 한다. 파나마전에서 이용과 황희찬은 좋은 연계 플레이를 보였다.
최전방 공격수의 경우 우리 지역으로 내려서기보다는 상대 수비수를 달고 다니거나, 아니면 과감한 정면 돌파를 요구한다. 수비형 MF인 기성용의 롱 패스, 공격형 MF인 남태희와 황인범의 스루패스를 통한 순간적인 찬스포착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이처럼 벤투는 평가전을 통해 공격 옵션을 하나 둘씩 늘려가고 있다. 다양한 공격패턴을 완성해가는 것 자체가 우리의 경쟁력을 키우는 길이다.
경기운영도 노련해야 한다. 이기고 있을 때와 지고 있을 때의 패턴은 달라야 한다. 특히 리드할 때 상대 반격에 맞서며 집중력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 파나마전에서 2골을 넣고는 방심한 탓에 경기 템포를 잃어버린 건 반성해야할 부분이다. 어렵게 넣고 쉽게 실점하는 것만큼 허탈한 게 없다.
다양한 실험을 통해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최소화하는 이유는 큰 경기에서 완성품을 내놓기 위해서다. 지금은 경기마다 합격과 불합격이 뒤섞인다. 우리의 초점은 내년 1월 아시안컵과 2022년 카타르월드컵이다. 벤투의 색깔도 그 때 더 선명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