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안방인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2018 KEB하나은행 FA컵’ 8강전을 앞둔 수원 삼성 서정원 감독의 표정은 복잡했다. 49일만의 컴백. 미소에는 서글픔이 녹아 있었다.
가족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침입해 온갖 욕을 배설한 일부 팬들에 대한 분노, 지원은 줄이며 현장 사기를 꺾는 언행을 한 구단 고위층을 향한 서운함 등이 겹쳐 팀을 떠났던 서 감독은 박찬형 대표이사(제일기획 부사장)의 거듭된 만류로 지난 15일 전격 복귀했다.
아름다운 그림은 아니었다. 탐탁치 않게 여긴 수장을 쫓아내지 못한(?) 구단과 집 떠났던 감독의 동거는 정상적이지 않다. 축구계는 “희대의 코미디”라고 혀를 찬다. 이번 사태로 모기업과 구단은 계속 엇박자를 내고, 프런트는 쪼개져 ‘안 되는 집안’의 전형이 된 수원의 이미지는 더욱 망가졌다. “임기는 올 시즌까지”라고 못 박았으나 서 감독의 체면도 구겨졌다.
유일한 기대요소는 선수단이 얻을 동력이었다. 염기훈 등 여러 고참들이 떠난 스승의 집을 계속 찾아갔다. 결정타는 아니었으나 복귀에 큰 영향을 끼친 건 틀림없다. “선수들이 내내 눈에 밟혔다. 조금이나마 힘을 주고 싶다”고 말한 서 감독의 눈가가 촉촉했다.
복귀 시점도 묘했다. 이번 주말 K리그1 33라운드를 끝내면 24일 가시마 앤틀러스(일본)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4강 홈 2차전을 갖는다. 국내·외를 오가며 예정된 단판 토너먼트다. 일주일 새 모든 걸 잃고 추락할 수 있었다. 이에 서 감독은 “상황이 좋으면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다행히 첫 걸음은 좋았다. 제자들은 어렵게 돌아온 스승에게 큰 선물을 안겼다. 1-1에서 돌입한 연장전에서도 한 골씩 주고받았고, 결국 ABBA룰의 승부차기에서 2-1로 이겼다. 3차례 상대 킥을 선방한 골키퍼 신화용이 빛났다. 앞선 전북 현대와 챔피언스리그 8강 홈 2차전에서도 경이로운 거미손 방어를 펼친 베테랑 수문장 덕분에 수원은 2002·2009·2010·2016년에 이은 통산 5번째 우승을 노리게 됐다. 수원과 울산 현대, 전남 드래곤즈, 대구FC로 압축된 4강 대진추첨은 18일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