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1 수원 삼성 골키퍼 신화용(35)은 ‘11m 러시안 룰렛’이 전혀 두렵지 않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 상대 킥을 막아내는 것보다 골네트가 출렁일 가능성이 훨씬 높은 잔인한 확률 게임은 오히려 그에게 편안함을 준다.
예전부터 그랬단다. “아마추어 때부터 페널티킥(PK)이나 승부차기가 무서운 적이 없었다. 스스로를 믿는다. 키커와 마주보고 있어도 아무 느낌이 없다”는 것이 그의 얘기다.
수원은 24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가시마 앤틀러스(일본)와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4강 홈 2차전을 갖는다. 3일 원정 1차전에서 두 골을 먼저 넣고도 2-3 뼈아픈 역전패를 당한 수원은 두 골차, 1-0 혹은 2-1로 스코어를 만들어야 결승티켓을 거머쥘 수 있다. 만약 수원이 3-2로 이기면 연장에 돌입하고, 승부차기로 이어진다.
K리그의 한 베테랑 수문장은 “승부차기는 정말 생각하기 싫다. 팽팽한 긴장감에 다리가 후들거릴 때도 있다”고 기억하나 최근 스포츠동아와 인터뷰를 한 신화용은 예외다. “(승부차기 상황이) ‘올 테면 오라’는 심정이다. 물론 우리가 90분 내에 가시마를 제압했으면 한다. 승부차기를 하려면 두 골은 내준다는 의미니까. 그렇게 실점할 생각이 없다.”
그럼에도 믿음직스러운 것은 그가 신화용이기 때문이다. 최근 두 차례 토너먼트 무대에서 엄청난 선방 쇼를 펼쳤다. 전북 현대와 ACL 8강 홈 2차전에서 종료직전, PK를 막고 승부차기에서도 맹활약해 팀의 4강행을 이끌었다.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FA컵 8강 승부차기에선 무려 세 차례나 PK를 막았다.
영업비밀을 완전히 공개할 수 없지만 나름의 원칙이 있다. “키커가 공을 놓고 달려와 킥을 할 때 답이 있다. 키커의 모든 동작을 놓치지 않는다. 달려오는 순간, 공이 오는 곳은 한부분이다. 그 곳을 찾기 위해 온몸의 신경세포를 곤두세운다.”
신화용은 ACL 결승진출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꼭 이겨야 하는 시나리오가 훨씬 큰 동기부여를 준다고 했다. 오랜 경험이다. “스포츠에 ‘경우의 수’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 비겨도 결승에 올라간다? 아주 치명적이다. 모두가 같은 생각이다.”
사실 수원의 아킬레스건은 불안한 뒷문이다. 실점 없는 경기가 드물다. 그러나 신화용은 수비진을 탓하지 않는다. 위험 동작을 줄이되 상대를 괴롭히는 움직임, 즉 ‘덤벼들지 않는’ 플레이를 조언할 뿐이다.
대신 신화용은 가시마 공격수들과 적극적으로 부딪히고 경합할 계획이다. 공간을 커버하고 싸워줘야 위험 장면을 줄일 수 있다고 본다. 또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활동 폭을 넓게 가져간다. 수비를 돕는 데 초점을 둔다. 간혹 실수도 한다. 하지만 위축되면 오히려 더 실점이 늘어난다. 능동적으로 볼 처리에 임해야 한다.”
신화용은 2004년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 프로에 데뷔했을 때부터 가슴에 새긴 좌우명이 있다. “오늘이 축구인생 마지막이다.” 평범하지만 그에게는 몹시도 특별하다. “계획을 길게 세울 틈이 없다. 지금이 중요하다. 몇 경기를 뛰고, 무실점을 얼마나 하느냐는 중요치 않다. 오늘을 잘해야 내일도 기약할 수 있다.”
신화용이 충실해야 할 ‘다음 경기’가 바로 가시마와의 운명을 건 승부다. “무슨 이야기가 필요한가. 한일전이다. 아시아 클럽 정상이 걸렸다. 반드시 이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