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식의 스포츠&]전임 감독은 ‘퇴출자 알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5일 03시 00분


차해원 전 여자배구대표팀 감독(왼쪽)과 김연경. 영이 서지 않는 지도자가 좋은 성과를 낼 수는 없다. 동아일보DB
차해원 전 여자배구대표팀 감독(왼쪽)과 김연경. 영이 서지 않는 지도자가 좋은 성과를 낼 수는 없다. 동아일보DB
안영식 스포츠 전문기자
안영식 스포츠 전문기자
국가대표팀 전임 감독제(制)가 삐걱거리고 있다. 허재 남자농구대표팀 감독, 차해원 여자배구대표팀 감독이 최근 잇달아 성적 부진 등을 이유로 사표를 내고 계약기간을 못 채운 채 중도하차했다. 두 감독은 각각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 세계여자배구선수권대회에서 팬들의 기대에 못 미쳤다.

비록 금메달은 따냈지만 팬들을 실망시킨 것은 선동열 감독도 마찬가지다. 최초의 야구대표팀 전임 감독인 그는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불려 나와 올 아시아경기 선수 선발 과정에서의 비리 여부를 추궁받았다.

대한배구협회는 올해 2월 김호철 차해원 감독을 사상 첫 남녀 국가대표팀 전임 감독으로 선임했다. 남자농구대표팀 전임 감독은 2008 베이징 올림픽 당시의 김남기 감독에 이어 허 감독이 두 번째다. 그런데 ‘대표팀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내걸고 본격적인 전임 감독제를 실시한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일련의 사태를 과도기의 어쩔 수 없는 시행착오로 간주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해당 협회의 전임 감독제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여자농구가 설령 전임 감독제를 실시하더라도 그다지 효험은 없을 듯하다.

선수는 물론이고 감독도 기회와 시간이 주어져야 성과를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시아경기나 올림픽을 주기로 적어도 4년은 임기를 보장해줘야 선수를 발굴해 팀의 체질을 바꾸고 경기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그게 전임 감독제의 필요조건이자 취지다. 물론 이는 지도자로서의 합당한 자질을 갖춘 검증된 감독을 선임한다는 전제에서다.

전 세계 스포츠계에서 국가대표팀을 오랫동안 이끈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은 세계랭킹 1위 브라질 남자배구의 베르나르두 감독이다. 그는 2001년부터 2016년까지 꾸준히 팀을 업그레이드시키며 올림픽 2회 우승(준우승 2회)과 세계선수권 3회 우승(준우승 1회) 등 국제대회 우승 18회(준우승 9회)의 눈부신 성적을 거뒀다. 이 과정에서 베르나르두는 힘과 높이에 기술을 접목한 토털 배구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무려 16년간 중장기 플랜을 소신 있게 밀고 나갈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편 독일 남자축구대표팀의 요아힘 뢰프 감독은 2006년부터 ‘전차군단’을 통솔하며 롱런하고 있다. 역대 독일 축구대표팀 감독 중 제프 헤르베르거(20년·167 A매치 94승), 헬무트 쇤(14년·139 A매치 87승)에 이어 세 번째로 재임 기간이 길다.

뢰프 감독은 디펜딩 챔피언으로 출전한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에 일격을 당해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게다가 ‘전설’ 헤르베르거를 뛰어넘는 자신의 통산 168번째 A매치(109승)였던 이달 14일 유럽축구연맹(UEFA) 네이션스리그 네덜란드전 0-3 완패에 이어 사흘 뒤인 17일 프랑스에 1-2로 역전패했지만 건재하다. ‘독이 든 성배’로 불리는 한국축구대표팀 감독 자리였다면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프로 종목은 선수들뿐만 아니라 감독들도 국가대표팀을 기피하고 있다. 자신이 맡고 있는 프로 팀을 관리하기도 벅찬데 처우가 상대적으로 열악하고 욕만 먹기 일쑤인 국가대표팀 전임 감독을 흔쾌히 맡겠다는 현역 감독은 이미 사라졌다. 안타깝게도 야구와 배구, 농구의 전임 감독제는 그 종목의 숙원(宿願)을 이룬 게 아니라 달리 방도가 없어서다. 협회도 확실한 청사진이 없다 보니 여론에 민감해 단일 대회 성적에 일희일비하고 있다.

연봉 수억∼수십억 원인 선수들에게 일방적인 애국심을 바랄 수는 없는 시대다. 그것은 감독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과거처럼 직전 프로리그 우승 팀 감독을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에 앉히는 게 여의치 않게 됐다. 그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곰곰이 생각해보자. 국가대표팀이 국제대회에서 참패당하고 졸전을 면치 못하는 종목의 국내 프로리그가 과연 인기를 끌 수 있을까. 국민 정서를 도외시한 채 선발한 선수가 포함된 국가대표팀이 환영받을 수 있을까. 관계자들이 당장은 나와 상관없다며 나 몰라라 한다면 그 종목의 미래는 암울할 뿐이다.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날 길이 요원하다.

선수를 적재적소에 기용하는 게 유능한 감독이다. 협회는 지도자의 기본 덕목을 갖춘 실력 있는 감독을 가려 뽑아야 할 책임이 있다. 스포츠도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 ‘국가대표 전임 감독직은 프로 팀에서 물러난, 쉬고 있는 감독의 아르바이트 자리’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어서야 되겠는가.

안영식 스포츠 전문기자 ysahn@donga.com
#전임 감독#차해원#선동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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