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세 소년이 전한 진심…SK의 올 시즌이 값진 이유

  • 스포츠동아
  • 입력 2018년 11월 3일 10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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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 넥센 히어로즈의 플레이오프(PO) 5차전 경기에 앞서 시구를 하고 있는 김진욱 군.
2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 넥센 히어로즈의 플레이오프(PO) 5차전 경기에 앞서 시구를 하고 있는 김진욱 군.
지속 가능한 가치. KBO리그 10개 구단이 모두 표방하는 목표다. 하지만 이를 실행하기는 쉽지 않다. 눈앞의 수익과 성적을 먼저 좇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SK는 성적과 가치 추구,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가고 있다.

SK 와이번스는 2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 플레이오프(PO) 5차전에서 극적으로 승리했다. SK는 이날 승리로 두산 베어스의 한국시리즈 상대로 낙점됐다.

이날 경기에 앞서 시구행사가 진행됐다. 주인공은 김진욱(11) 군이었다. 김 군은 이미 지난 8월, 한 차례 시구자로 나선 바 있다. 연예인과 정치인의 시구 일색인 가을야구에서 이미 한 번 시구를 했던 소년이 또 한 번 마운드에 오른 사연은 무엇일까.

지난 8월 SK 힐만 감독은 소아암 아동을 위한 모발을 기부하는 행사에 참여했다. 힐만 감독의 부인 마리가 직접 가위를 들고 지난해 8월부터 기른 남편의 머리를 커팅하고 있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지난 8월 SK 힐만 감독은 소아암 아동을 위한 모발을 기부하는 행사에 참여했다. 힐만 감독의 부인 마리가 직접 가위를 들고 지난해 8월부터 기른 남편의 머리를 커팅하고 있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 김진욱 군이 다시 마운드에 서기까지

한국에 입국했을 때까지만 해도 장발이었던 힐만 감독은 지난 8월 홈경기에 앞서 1년간 길렀던 머리칼을 잘랐다. 소아암 어린이를 돕기 위한 캠페인의 일환이었다. 힐만 감독은 SK 지휘봉을 잡은 첫 해였던 지난해 여름, 항암치료 과정에서 머리카락이 빠지는 소아암 아동들을 위한 가발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힐만 감독이 이발을 하지 않은 것도 이때부터다. 모발 기부를 위해서는 머리카락이 25cm 이상으로 길어야 했기 때문이다. 힐만 감독의 이러한 움직임에 SK의 에이스 김광현도 동참해 머리칼을 기른 뒤 올 시즌 초 기부를 진행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한창 머리칼을 기르던 지난해 마무리캠프 즈음, 힐만 감독은 구단 측에 ‘소아암 환우와 개인적 결연을 맺고 싶다’는 의사를 타진했다. SK 측은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인천지부에 이를 문의했고, 김진욱 군과 연결이 됐다.

그는 야구선수가 꿈이지만 시신경교종이라는 병 때문에 야구를 할 수 없었다. 힐만 감독은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 7월, 직접 산타클로스 분장을 한 채 안산 신길초등학교를 찾았다. 힐만 감독은 글러브, 공, 유니폼, 모자 등을 직접 전달했다.

힐만 감독이 머리칼을 잘랐던 8월 11일 인천 KIA 타이거즈전에서 진욱 군이 시구자로 나섰다. 그리고 약 석 달이 지난 11월 2일, 그가 PO 5차전에 다시 시구를 한 것이다. 이미 올 시즌 종료 후 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밝힌 힐만 감독이지만 구단 측에 “앞으로도 환우들을 후원하고 싶다”는 의사를 타진한 상황이다.


● 지속 가능한 가치, SK가 강한 이유

시구 후 만난 진욱 군은 “저번 시구보다 이번에 더 잘 던진 것 같다”며 미소 지었다. 첫 시구 후 그는 친구들 사이 스타가 됐다. 담임교사는 수업시간에 시구 영상을 재생하며 “덕분에 나는 물론 다른 학생들도 에너지를 얻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이날 그는 특별한 선물을 준비해왔다. 스케치북에 선수단의 이름을 하나하나 직접 적은 뒤 ‘SK,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진욱이랑 Go! Go!’라는 문구를 달았다. 전날 밤에도 선수단에게 이 스케치북을 전달하는 꿈을 꾼 진욱 군이다. 힐만 감독 바로 아래에는 본인에게 2018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모자와 유니폼을 선물한 박종훈(27)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박종훈은 “솔직히 나도 소아암 환우들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병세가 심해 야구장을 찾기 힘들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진욱이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너무 씩씩하다. 병마와 싸우는 모습을 보며 나도 배우는 것이 많다”고 말했다. 박종훈은 이날 경기 전, 라커룸을 돌며 자신의 AG 유니폼에 SK 선수단 대부분의 사인을 받았다. 진욱 군을 위한 선물이었다.

SK 관계자는 “소아암의 경우 완치율이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김진욱 군뿐만 아니라 고통받고 있는 환우들이 모두 완쾌했으면 좋겠다. 구단 차원에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진심을 전했다.

진욱 군의 바람은 현실이 됐다. SK는 넥센을 극적으로 누르고 두산 베어스와 한국시리즈 일전을 치른다. 올 가을 SK의 엔딩이 우승일지, 준우승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SK의 올 시즌은 이러한 한 시즌의 성적과 바꿀 수 없는, 지속 가능한 가치를 위한 투자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SK의 이러한 행보는 앞으로도 이어질 예정이다. SK가 성적을 떠나 강한 팀인 이유다.

인천|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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