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스위스대회부터 2018년 러시아대회까지 월드컵 엔트리에 포함된 한국축구선수는 모두 159명이다(2회 이상 참가자는 1명으로 계산). 그들 중 단 1분이라도 그라운드를 밟은 선수는 124명뿐이다. 4번이나 출전한 선수도 있지만, 사실 월드컵은 단 한번 나가기도 힘든 무대다. 그런 월드컵을 위해 선수들은 4년이라는 기나긴 시간을 묵묵히 버텨낸다.
월드컵을 앞두고 최종엔트리가 발표될 때면 늘 희비가 교차한다. 태극마크는 가문의 영광이다. 그 영광을 차지한 쪽은 만세라도 불러야하고, 그렇지 못한 쪽은 좌절한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실력은 충분한데도 부상 때문에 엔트리에서 탈락하는 경우다.
나는 김진수(26·전북 현대)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아린다. 러시아월드컵 개막을 앞둔 5월의 어느 날, 서울의 한 재활센터에서 만난 그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3월 북아일랜드와 평가전에서 무릎 인대를 다친 그는 초조했다. 어떻게든 빨리 치료해 러시아행 티켓을 거머쥐고 싶었다. 뛰고 싶다는 강렬한 의지는 온 몸을 비집고 다녔다. 컨디션만 돌아온다면 왼쪽 풀백의 주전자리는 확정적이었다. 단 하나의 목표, 그걸 위해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회복은 더뎠다. 의지만큼 재활은 순조롭지 못했다. 본선까지 완쾌될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해볼 건 다 해본 그는 현실을 인정했다. 최종엔트리는 다른 선수의 몫이 됐다. 짜내도 더 이상 나올 것 같지 않던 눈물을 또 흘렸다.
탈락의 아픔은 처음이 아니다. 4년 전에 이미 경험했다. 2014년에는 최종 엔트리에 포함됐다가 발목 인대 부상 탓에 명단에서 빠졌다. 한국 월드컵 역사에서 보기 드문 불운이다. 이번 낙마를 지켜본 팬들의 마음이 더욱 먹먹했던 이유다.
그렇게 2018년이 송두리째 흘러가는 듯 했다. 김진수의 소속팀 전북은 일찌감치 K리그1 우승 잔치를 했다. 이번 겨울 동안 완벽한 몸을 만들어 내년 시즌을 기약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그는 시즌의 끝자락을 붙잡고 일어섰다. 아쉬움을 훌훌 털어버린 채 활기찬 모습으로 돌아왔다.
지난달 28일 수원과 경기에서 후반 막판 교체 투입되면서 복귀 소식을 알렸다. “돌아오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교체로 들어갈 때는 눈물이 왈칵 나오더라”는 말에서 지난 7개월간의 힘겨운 재활 과정이 묻어났다.
4일 홈에서 열린 울산과 경기에서는 선발로 나섰다. 이젠 자신감이 붙었다. 아울러 최강희 감독의 배려도 한몫했다. 이번 시즌을 마감하고 중국으로 무대를 옮기는 최 감독은 어떻게든 그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가벼운 몸놀림으로 풀타임을 뛰었다. 기분 좋게도 오랜 시간 기다려준 홈팬들에게 복귀 골까지 선사했다. 그는 “가장 큰 동기부여는 팬들이다”며 감사를 전했다. “골 넣은 것뿐 아니라 다치지 않고 경기를 마친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며 기분 좋은 미소도 지었다.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온 듯 하다. 부상도, 엔트리 탈락의 아픔도, 그리고 재활의 힘겨움도 아무 일 없었던 듯 말끔해졌다. 이제부터는 또 다시 앞날이다. 4년 뒤를 기약해야한다. 두 차례의 지독한 불운을 털어버리고, 2022년 카타르월드컵을 바라본다. 그가 뛰는, 아니 뛰어야만 하는 이유다.
부상의 트라우마가 더 이상 그를 덮치지 않기를 빌고 또 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겪은 부상탈락의 아픔은 더 높이 날기 위한 발판이라고 믿고 싶다. 다시 시작하는 김진수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