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잔치. 포스트시즌(PS)을 일컫는 단어다. 한국시리즈(KS·7전4선승제)는 그 잔치의 백미다. 승자는 그 해의 주인공이 되지만 패자는 박수받기 힘들다. ‘두 번째로 잘한 팀’이라는 수사만큼 무색한 말은 없다.
팬들이 KS를 보며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그 감동을 만드는 이들에겐 큰 부담이다. 아무나 오를 수 없는 마지막 무대이지만, 그 왕관을 위해서는 무게를 견뎌야 한다. 올해 KS 주인공 두산 베어스와 SK 와이번스의 모든 구성원은 자신과의 싸움, 상대와의 싸움은 물론 주위의 평가와도 싸웠다.
김태형 감독은 5차전에 앞서 “매일 피가 마른다. 무조건 4차전에서 끝나기만 바라지만 기대와 다른 것이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2015년부터 4연속시즌 KS에 올랐고 두 차례 왕좌에 올랐음에도 긴장에 익숙해질 수 없는 숙명이다.
플레이 하나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선수들은 몇 배 더 큰 부담을 느낀다. 큰 경기 경험이 많은 두산 선수들이라고 예외일 리 없다. ‘캡틴’ 오재원은 “4차전까지 그라운드 위에서 헛구역질을 백 번은 한 것 같다. 일반 팬들에게는 수능시험일이 가장 긴장된다고 들었다. PS는 그 수능시험을 매일 치르는 기분”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허경민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까지 PS 맹활약으로 자타공인 ‘가을남자’로 불렸던 그는 올해 주춤하다. “성적이 좋을 때는 부담감도 잊는다. 하지만 부진할 때의 압박은 느껴본 사람만 알 것이다. 오히려 멋모르고 뛰던 때는 몰랐는데, PS 경험이 쌓일수록 긴장은 심해진다.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임한다. 모든 야구팬들이 우리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당연히 안타를 쳐야 했다’, ‘당연히 잡았어야 했다’는 시선을 견디는 것도 또 다른 숙제다.”
SK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만19세였던 2007년 데뷔 시즌부터 KS 무대를 치렀던 김광현은 “막상 마운드에 올라가면 경기에 집중하느라 긴장을 잊는다. 하지만 경기 전과 후는 정말 초조하다. 입술이 바짝바짝 마른다”고 설명했다.
PS가 처음인 선수들은 낯선 긴장과 마주하고 있다. 생애 첫 PS에서 기대 이상으로 선전한 SK 박종훈은 “평소 잠이 많은 편이다. 선발등판을 앞둔 날에도 7~8시간만 자기 위해 잠이 쏟아지면 서 있을 정도다. 하지만 KS는 달랐다. 새벽 1시에 자려고 누웠는데 6시까지 뜬눈으로 지새웠다”고 고백했다.
그런 무게감을 견디는 이는 가장 빛나는 별이 된다. 박종훈은 평소의 절반만 잔 10일 KS 5차전에서 5이닝 1실점 호투로 팀 승리를 이끌었다. 엄청난 부담감과 싸우며 올 가을, 또 하나의 스토리를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