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딘 경기장(4만192석)에는 4만 명의 베트남 팬이 있다. 그들과 함께 상대를 압도하겠다.”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59)의 이 말은 우승을 열망하는 베트남의 축구 열기를 더 뜨겁게 만들었다. 14일 베트남 누리꾼들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응원으로 상대에게 좌절을 안기자”는 반응을 보였다. 베트남은 15일 오후 9시 30분(한국 시간) 베트남 하노이의 미딘 경기장에서 말레이시아와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결승 2차전 안방 경기를 치른다.
붉은 바탕의 금성홍기(베트남 국기)를 손에 들고, 붉은 띠를 머리에 두른 베트남 팬들의 열정이 폭발하는 곳이 미딘 경기장이다. 베트남 언론 VN익스프레스에 따르면 안방경기 시 미딘 경기장의 관중 함성은 120dB(데시벨)에 달한다. 전기톱(100dB)보다 큰 소리로 상대의 기를 죽이는 것이다. 여기에 베트남 전역에서 대규모 응원전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방문경기를 치르는 말레이시아도 하노이행 비행기를 증편하는 등 대규모 응원단을 꾸리면서 결전을 앞둔 하노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 스피드와 세트피스의 대결
1차전 2-2 무승부로 유리한 고지에 오른 팀은 베트남이다. 베트남은 방문경기 다득점 우선 원칙에 따라 2차전에서 0-0 또는 1-1로 비기기만 해도 우승한다. 또한 베트남은 1차전에 공격수인 응우옌아인득 등 주전 일부가 뛰지 않아 체력 싸움에서도 우위에 있다.
전문가들은 베트남이 빠른 공수 전환과 강한 압박을 앞세워 공격적 경기 운영을 할 것으로 전망했다. 베트남은 1차전에서 민첩성이 떨어지는 말레이시아 수비진을 공략하기 위해 상대 수비 뒷공간으로 향하는 침투 패스를 수차례 시도했다. 박문성 SBS 해설위원은 “베트남은 빠르고 공격적인 축구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말레이시아가 강팀이라면 0-0으로 비겨도 우승하는 베트남이 수비적인 경기를 할 것이다. 하지만 전력에서 크게 밀리는 부분이 없기 때문에 적극적 침투 등 기존의 경기 운영 방식을 고수할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2차전에서 반전을 꾀하는 말레이시아는 경기 초반 베트남의 공세를 막는 데 주력한 뒤 세트피스(프리킥 등)에서 적극적으로 득점을 노릴 것으로 예상된다. 세트피스는 공이 정지된 상황에서 공격이 시작되기 때문에 상대의 거친 압박을 피해 공격을 시도할 수 있다. 1차전에서 말레이시아의 세트피스를 이끈 미드필더 사파위 라시드의 왼발을 주목해야 한다. 킥력이 뛰어난 그는 왼발 감아차기 프리킥으로 2-2 동점을 만드는 골을 터뜨렸다. 베트남이 말레이시아에 프리킥 등 세트피스를 내주지 않기 위해서는 페널티박스 근처에서의 불필요한 반칙을 줄여야 한다.
○ ‘쌀딩크의 전설’ 완성될까
베트남이 우승을 할 경우 10년 만에 대회 정상에 오른다. 또한 베트남 언론과 폭스스포츠 아시아 등에 따르면 베트남이 결승 2차전에서 승리 또는 무승부를 거둘 경우 A매치(국가대표팀 간 경기) 연속 무패 신기록(16경기) 우승을 작성하게 된다. 결승 1차전까지 베트남은 A매치 15경기 연속 무패(7승 8무)로 프랑스와 A매치 최다 무패 타이를 이루고 있다.
이처럼 베트남 축구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박 감독은 국내 팬들에게 ‘쌀딩크’로 불린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수석코치로 거스 히딩크 감독(72·네덜란드)을 보좌했던 그가 쌀국수로 유명한 베트남에서 맹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은 외국인 지도자로서 각국 축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박 감독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히딩크 감독에게 배운 것들이 외국인 감독 생활을 하는 데 100% 도움이 된다”고 말했었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을 4강으로 이끈 한일 월드컵 당시 ‘공포의 삑삑이(타이머)’를 켜놓고 왕복달리기 등을 실시해 한국 선수들의 체력을 키웠다. 박 감독은 베트남 선수들이 ‘70분 이후에도 몸싸움에서 지지 않는 축구’를 할 수 있도록 ‘공포의 야간 웨이트트레이닝’을 실시했다. 박 감독을 보좌하고 있는 배명호 피지컬 코치는 “베트남 선수들이 하체는 튼튼한데 상체 근력이 약했다. 그래서 한밤중에도 정말 열심히 상체 운동을 시켰다. 처음에는 선수들이 정말 힘들어했다. 하지만 꾸준히 훈련한 결과 근육이 고르게 발달하면서 힘과 지구력까지 좋아졌다”고 말했다.
두 감독은 탁월한 선수 관리 능력을 지녔다는 공통점도 있다.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대표팀 관계자는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의 경기장 밖 생활에도 관심을 가졌다. 친구와 다퉈 기분이 상해 있는 선수에게는 일부러 농담을 던지거나 장난을 쳐서 기운을 북돋아 줬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선수들에게 발마사지를 직접 해주거나, 부상 선수에게 자신의 항공기 비즈니스석을 양보하는 방식 등 ‘파파(아버지) 리더십’으로 팀을 이끌고 있다. 박 감독은 “베트남 축구협회가 나를 영입하면서 가장 먼저 부탁한 것이 ‘스즈키컵 우승을 이뤄 달라’는 것이다. 베트남 국민들의 기대도 높아 부담이 크지만 운명이라는 생각으로 재밌게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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