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서울 맨’ 고요한, “인생을 공부한 2018년, 두 번의 아픔은 없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8년 12월 24일 05시 30분


FC서울 고요한은 ‘원 클럽 맨’으로 남고 싶어 한다.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치른 올 시즌은 유난히 힘겨웠기에 “올해의 아픔을 두 번 다시는 반복할 수 없다”며 스스로를 더욱 강하게 채근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FC서울 고요한은 ‘원 클럽 맨’으로 남고 싶어 한다.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치른 올 시즌은 유난히 힘겨웠기에 “올해의 아픔을 두 번 다시는 반복할 수 없다”며 스스로를 더욱 강하게 채근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고요한(30·FC서울)과의 인터뷰는 꽤 오래 전 진행했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온 시점에 경기도 구리에 위치한 GS챔피언스파크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재미있고 흥미로운 내용도 참 많았다.

그럼에도 정작 고요한의 목소리를 풀어낼 기회가 없었다. K리그1 ‘대표 명가’ 서울의 추락에는 날개가 없었다. 정규리그 33라운드 이후 운명이 결정된 스플릿 라운드에서 그룹B(7~12위)로 내려앉더니 급기야 11위까지 순위가 떨어졌다.

K리그1의 11위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꼴찌(12위)가 K리그2로 자동 강등되고, 11위는 K리그2 플레이오프(PO) 여정을 통과한 팀과 승강PO를 펼치기 때문이다. ‘설마’ ‘혹시나’ 했던 상황이 현실로 닥친 2018시즌, 서울은 불행 중 다행으로 최악은 면했다. K리그2 부산 아이파크와의 승강PO에서 1·2차전 합계 4-2로 승리하며 잔류에 성공했다.

누구보다 마음고생이 심했을 ‘원 클럽 맨’ 고요한도 그제야 싱긋 웃었다. “내 축구인생의 모든 것이 이곳(서울)에 있다”던 그이기에 시즌 내내 하향곡선을 그린 서울의 모습은 용납할 수 없었다. 고통스러웠던 승강PO를 마치고 새 시즌을 향한 짧은 휴식에 나선 고요한은 “안일함과 방심이 조금씩 쌓여 팀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바닥을 쳤으니 다시 비상할 일만 남았다. 올해의 아픔을 두 번 다시는 반복할 수 없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FC서울 고요한. 스포츠동아DB
FC서울 고요한. 스포츠동아DB

● 처참함을 딛고

-올 시즌 최종순위를 11위로 마쳤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우리가 상위권에 남을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특히 승강PO로 가기 직전의 두 경기에서 승점 1이라도 챙겼다면 이런 수모는 겪지 않을 수 있었다. 솔직히 ‘설마’했다. ‘우린 FC서울이다’라는 생각도 있었다. 작은 방심이 쌓였다.”
-서울도, 본인도 처음 겪은 승강PO가 아닌가.

“올해는 정말 다이내믹했다. 국가대표팀 일원으로 2018러시아월드컵을 다녀왔다. 축구선수로는 정점을 찍은 커리어다. 그러다 생각지 못한 승강PO를 경험했다. 최고의 시즌이 최악으로 바뀌었다. ‘인생이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우울했다. 기쁘다가도 고통스러웠다.”

-승강PO는 어떤 마음가짐이었나.

“2004년 서울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해 15년을 보냈다. 수많은 경기를 치러봤다. 좋을 때와 나쁠 때 무수히 많은 경기를 치렀다. 이렇게 힘든 적이 없었다. 마지막 결전을 준비하면서 개인이 아닌, 팀 전체가 돋보이는 경기를 하고 싶었다. 동료들과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좀더 솔직히 말하자면 많이 위축됐다. 나부터 그랬다. 다만 ‘내 인생 마지막 경기’라는 생각으로 뛰었다.”

-최용수 감독이 소방수로 합류했다.


“어렵게 다시 부임하셨을 당시, 우린 워낙 위축돼 있었다. 일단 감독님과 꽤 오랫동안 시간을 보냈기에 마음은 편했지만 부담이 대단했다. 감독님이 우리에게 전한 메시지가 있다. ‘편안히 뛰자. 올해가 여러 분들의 마지막 시즌이 아니지 않나’라는 내용이었다. 적지 않은 부담을 받으며 경기를 뛰었다. 난 고참으로서 더욱 괴로웠기에 금세 가슴에 와 닿았다.”

-내년의 서울은 어떻게 달라질까.

“우리 팬들에게 너무 참담한 아픔을 드렸다. 죄송하고 또 죄송할 뿐이다. 예전처럼 우리는 항상 우승경쟁을 펼치는 팀으로 남고 싶다. 더욱 재미있는 축구를 선물하기 위해 철두철미하게 대비할 것이다.”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 축구의 고향 서울

-서울의 의미는 각별할 듯 하다.


“축구인생의 절반을 서울에서 보냈다. 가족이다. 태극마크도, 결혼도 전부 이곳에서 했다. (그래서 책임감이 더 컸을 텐데) 물론 그렇다. 주장으로서, 고참으로서 외국인 선수들과 후배들에게 당부한 것이 소속감이다. 서울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내가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동료들과 나눈 이야기를 좀더 구체적으로 한다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한 마음 한뜻으로 뭉쳐야 한다는 부분이다. 올해를 돌이켜보면 꼭 잡아야 할 팀을 놓칠 때가 많았다. 기회를 살리지 못했을 때 반드시 위기가 찾아오더라. 물론 후배들의 입장이 이해는 된다. 예전에는 내 자신의 플레이만 집중하면 됐다. 그런데 서울 맨으로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신경 쓸 부분도 많아졌다.”

-서울이 잘 풀릴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가 있나.


“결국은 선수들의 의지다. 축구는 11명이 하는 팀 스포츠다. 서로가 힘들 때 한 걸음 더 움직여주고 한 마디라도 더 말을 건네야 한다. 돌이켜보면 개인플레이에 집중할 때 오히려 경기력은 떨어졌다. 솔직히 올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출전권을 보고 달렸다. 그런데 어려운 목표였다. 연승도 적었다. 서울 엠블럼에 부끄러운 적이 많았다.”

-어쩌다보니 ‘원 클럽 맨’의 인생이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주전으로 꾸준히 뛰고 싶었다. 이후에는 국가대표를 꿈꿨고, 이를 이루자 월드컵을 목표했다. 정말 많은 걸 이뤘다. 개인적으로도 크게 성장했다. 그런데 아직 한 가지를 이루지 못했다. ACL 우승이다. 솔직히 ‘원 클럽 맨’으로 남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포기하지 않고 버텼다. 이제는 서울에서 마무리를 짓고 싶다. 서울을 떠나지 않은 걸 한 순간도 후회한 적이 없다.”

-훗날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


“아주 간단하다. 서울의 전설로 남고 싶다. 항상 성실했고 헌신했던, 서울에 결코 없어선 안 될 존재로 기억되고 싶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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