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 새 없이 달려야 했다. 정말이지 그저 앞만 보고 뛰었다. 그토록 간절히 바란 성과를 낸 후에도 기쁨과 즐거움을 제대로 만끽할 겨를이 없었다. 한 대회를 끝내면 또 다른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베트남축구대표팀 박항서(59) 감독과 ‘조력자’ 이영진(55) 수석코치의 요즘 삶이다.
베트남 축구의 2018년은 찬란했다. 연중 내내 낭보가 이어졌다. 스타트를 뗀 것은 23세 이하(U-23) 대표팀이었다. 1월 중국에서 끝난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일구더니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는 사상 처음 4강 진입의 쾌거를 이뤘다.
이에 질 새라 A대표팀이 방점을 찍었다. ‘동남아시아 월드컵’으로 명명된 스즈키컵에서 꼭 10년 만에 우승 타이틀을 가져왔다. 적어도 동일 지역에서는 적수 없는 챔피언으로 명성을 떨치게 됐다.
그러나 이번에도 박 감독은 정상의 여운을 오래 누리지 못했다. 베트남이 대단히 중대한 여정을 앞뒀기 때문이다. 내년 1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개최될 AFC 아시안컵이다. 유난히 긴 레이스로 정평이 난 스즈키컵을 마치자마자 대표팀이 다시 소집됐다. 베트남 하노이 도심의 한 고급호텔에 여장을 풀고 숙식을 해결하면서 아시안컵 체제에 임했다.
물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박 감독은 25일 하노이 미딘국립경기장에서 열린 북한과 평가전을 앞두고 “스즈키컵과 아시안컵까지의 간격이 너무 타이트하다. 가장 걱정스러운 건 우리 선수단의 컨디션이다”며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많이 지쳤는데 회복할 틈이 없다”고 아쉬워했다. 그럼에도 베스트 전력을 가동하지 않은 베트남은 공세를 펼쳤다. 비록 최종 스코어는 1-1이었으나 흐름을 주도했다. 베트남은 A매치 무패행진을 17경기(9승8무)로 이어갔다. 패배가 익숙한 과거의 무기력증은 탈피한지 오래다.
베트남은 북한과의 친선경기를 끝으로 자국에서의 모든 스케줄을 마무리했다. 26일 회복훈련을 마친 가운데 27일 카타르 도하로 출국한다. UAE로 이동하기에 앞서 도하에 머물며 전력을 다지는 한편, 현지 적응에 나선다. 필리핀과 스파링 매치-업이 별도로 마련됐으나 선수단 몸 상태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 급선무다.
전 국민의 뜨거운 응원은 지친 베트남대표팀에게 엄청난 힘이다. 특히 북한전 현장에서도 스즈키컵에서 드러난 베트남인들의 단결과 합심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4만 관중으로 가득 들어찬 미딘국립경기장의 분위기는 대단했다.
강한 자존심을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쌓인 오랜 콤플렉스에서 벗어난 팬들은 자부심으로 가득하고 세대교체를 일부 진행하면서 주장을 교체, 분위기를 전환한 선수단은 자신감으로 온몸을 채웠다.
지난해 10월 베트남축구협회(VFF)와 계약하면서 “계약기간이라도 채울 수 있을까”란 의문으로 베트남 도전을 시작한 박 감독은 언제나 그랬듯이 자세를 낮추고 있다. “조별리그만 통과해도 우리에게는 대단한 성공”이라고 했다.
실제로 스즈키컵과 아시안컵은 차원이 다르다. 거의 수준이 비슷했던 국가들이 경쟁하는 대신, 천차만별의 전력차를 지닌 팀들이 격돌한다. 베트남은 이란~이라크~예멘과 조별리그 D조에 편성됐다. 당장 토너먼트 라운드 진입도 버거워 보인다. 아시안컵에서 참패하면 지금까지 쌓아올린 위업과 공적이 흐트러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베트남의 아시안컵 도전기를 지배하는 단어는 아픔이다. 1956년 첫 대회, 1960년 2회 대회에 출격한 뒤 인도네시아·태국·말레이시아와 공동개최한 2007년 대회에 나섰다. 당시 경험한 8강이 역대 최고 성과다.
12년의 오랜 침묵을 깬 현지의 기대치가 폭발적일 수 밖에 없다. 중압감이 엄청나다. 다만 박 감독은 잘 알고 있다. 먼저 도전하고 후회해도 늦지 않다는 진리를 누구보다 실감한다. 무섭고 두렵다고 도전을 피했다면 지금의 영광도 없었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한 번에 한 걸음씩, 스텝바이스텝의 자세로 1년여를 견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