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는 ‘외국인 감독’이라는 말이 유난히 살갑게 느껴졌던 한해였다. 프로야구에서는 미국 출신 트레이 힐만이 KBO리그 외인 감독으로는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에 성공했다. 축구국가대표팀에서는 포르투갈 출신 파울루 벤투가 지휘봉을 잡아 선전을 거듭했다. 평창동계올림픽에서는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을 지도한 캐나다 출신 새러 머리가 이슈를 몰고 다녔다. 환경이 다른 곳에서 지도자를 하는 건 모험에 가까운데, 이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신의 능력을 보여준 그들은 박수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프로축구에서도 이역만리에서 온 2명의 지도자가 기대 이상의 성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브라질 출신 안드레는 대구를 FA컵 정상에 올려놓으며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출전권을 거머쥐었다. 2003년부터 K리그에 참여한 대구가 우승 트로피를 차지한 건 처음이다. 리그 순위도 K리그1(1부) 하위스플릿 중 가장 좋은 7위를 마크했다.
노르웨이 출신 욘 안데르센은 인천의 숙원인 잔류에 성공했다. 지난해 4월까지만 해도 북한대표팀을 맡았던 그는 러시아월드컵 휴식기인 6월 이기형 감독 후임으로 지휘봉을 잡았는데, 마지막까지 피를 말린 가운데 최종 순위를 9위까지 끌어올렸다. 인천 특유의 생존 DNA를 살려냈다는 평가다.
이런 분위기 덕분일까. 지난 시즌이 끝난 뒤 2명의 외인 감독이 추가로 합류했다. 지난 시즌 우승팀 전북은 중국으로 떠난 최강희 감독 후임으로 조세 모라이스(포르투갈)를 뽑았다. 지난 시즌 꼴찌로 추락하며 올해 2부로 강등된 전남은 최근 파비아노 수아레스(브라질)와 계약했다. 두 팀 모두 창단 이후 처음으로 외인 감독을 영입했다.
모라이스는 인터밀란, 레알 마드리드, 첼시 등 유럽 최고의 팀에서 수석코치로서 명장 조세 무리뉴와 함께 팀을 챔피언으로 이끈 지도자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더 높이 도약 시킬 수 있는 젊고 유능한 인물”이라는 게 구단의 설명이다.
수아레스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주로 선수 및 지도자 생활을 했는데, 구단은 K리그 외국인의 다수를 차지하는 브라질 선수에 대한 파악이 용이한 점을 높이 산 것으로 전해진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2019시즌 K리그에는 총 4명의 외국인이 벤치를 지킨다. 또 K리그 통산 외인 지도자는 모두 24명으로 늘었다. 1990년 대우(현 부산)를 맡았던 동독 출신 프랑크 엥겔이 최초이고, 수아레스가 24번째다. 외국인 가운데 리그 우승을 맛본 지도자는 비츠케이(1991년 대우)와 파리야스(2007년 포항), 빙가다(2010년 서울) 등 3명이다. 역대 외국인 감독 최다승은 파리야스의 83승(55무43패)이다.
올 시즌 외인 감독이 주목을 받고 있는 건 긍정적이다. K리그의 활력과 흥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생긴다. 다만, 오자마자 당장 성적을 내놓으라고 닦달하기보다는 그들이 전술적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시간과 기회를 주는 게 중요하다. 비싼 돈 들여 영입했다면 기다릴 줄도 알아야한다. 낯선 환경과 문화를 받아들인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아울러 지도자들도 자신의 창의적인 전술을 보여줘야 한다. 우리 팬들을 만만히 봐서는 곤란하다. 이미 선진축구에 익숙한 팬들의 눈높이는 상당한 수준이다. 팬들은 감독의 국적을 따지지 않는다. 대신 얼마나 알찬 경기를 보여주느냐를 살핀다. 수준 높은 전술을 보여줄 때 팬들도 애착을 가지고 경기장을 찾을 것이다. 그게 흥행을 보장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