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미스터 올스타’ 김용희 전 감독 “SK만의 아이덴티티를 찾고자 했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9년 1월 11일 05시 30분


김용희 전 감독은 프로 3개팀에서 지휘봉을 잡았다. 2015∼2016시즌에는 2년간 SK 와이번스의 사령탑을 맡았다. 인품이 훌륭해 주변에 적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데, 이는 김 전 감독이 오랫동안 사령탑으로 롱런한 비결이다. 스포츠동아DB
김용희 전 감독은 프로 3개팀에서 지휘봉을 잡았다. 2015∼2016시즌에는 2년간 SK 와이번스의 사령탑을 맡았다. 인품이 훌륭해 주변에 적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데, 이는 김 전 감독이 오랫동안 사령탑으로 롱런한 비결이다. 스포츠동아DB
김용희(64) 전 프로야구 감독은 프로 3개 팀에서 사령탑을 지냈다. 실력과 명성에 인품까지 두루 갖추지 않고선 쉽지 않은 이력이다. 고향팀 롯데 자이언츠를 시작으로 삼성 라이온즈, SK 와이번스 지휘봉을 차례로 잡았다. 가장 최근의 팀이 SK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우승에 성공한 트레이 힐만 전 감독의 임기 직전인 2015~2016년으로, SK가 2000년대 ‘왕조’의 문을 활짝 연 뒤로 가장 큰 어려움을 겪던 시기다. 새로운 리더십과 정체성의 확립이 절실한 시점에 팀을 맡아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제 SK는 ‘거포군단’으로 확실하게 거듭났다. 팀 홈런에서 2015년 5위에 이어 2016년 2위로 도약했고, 2017년과 2018년에는 연속으로 1위를 차지했다. 김 전 감독이 SK에 주입한 새로운 DNA 덕분이다.

● 평생토록 야구에 중독된 ‘거인’

김 전 감독은 부산 토박이다. 고교(경남고) 때 이미 부산·경남을 넘어 전국구 대형타자 재목으로 인정받았고, 프로선수로 고향 팬들의 사랑도 듬뿍 받았다. KBO 경기감독관으로 지난 한해 또한 분주하게 보낸 뒤 지금은 부산의 집에 머물고 있다. 그는 10일 “부산대학교 쪽에 살고 있다. 나고 자란 곳이 부산이라 쭉 이곳에 산다”며 “아들과 딸은 모두 결혼해 요즘은 손자들을 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딸이 서면에 살고 있어서 연년생 외손자들과 함께 종종 집에 온다. 늘 보는데도 또 보고 싶다”고 말했다.

자식에 대한 애틋함과 더불어 아내에 대한 미안함도 잊지 않았다. 그는 “야구하는 사람들은 아내에게 죄가 많다. 이사도, 애 키우는 것도 모두 아내 혼자 했다”며 비시즌은 온전히 부인과 함께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야구가 없는 계절이지만, 겨울에도 TV로 야구를 즐겨 본다. 2018시즌을 되돌아보는 하이라이트 영상들이 케이블TV 스포츠채널로 심심찮게 방송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전 감독은 “요즘은 호주야구(질롱코리아 경기)도 중계해줘서 잘 보고 있다. 심판들의 판정이 너무 들쭉날쭉하더라. 거기에 대면 우리 심판들은 양반이다”며 웃었다.

● 문학에 뿌린 팀 개조의 밀알

2018년 SK의 한국시리즈 우승은 극적이었다. 정규시즌에는 1위 두산 베어스에 무려 14.5게임차로 뒤진 2위였다. 플레이오프에선 히어로즈와 5차전까지 치렀고, 한동민의 거짓말 같은 끝내기홈런을 앞세워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드라마 같은 명승부에 모두가 열광했다. 그러나 한국시리즈 우승은 두산의 몫으로 여겨졌다. ‘어우두(어차피 우승은 두산)’가 대세였다.

예상 밖 결과가 이어졌다. ‘미러클 두산’을 ‘어메이징 SK’가 이겼다. SK 타선에 즐비한 거포들이 적시에 한방씩을 터트렸다. 김 전 감독이 SK를 이끄는 동안 ‘거포 DNA’를 착실히 이식해준 덕분이다. SK 구단 관계자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김 전 감독은 “SK 2군을 맡았을 때(2011년 9월)부터 문학구장(현 인천SK행복드림구장)의 특성을 고려해 지도하려고 했다. 구장의 특성에 맞는 SK만의 아이덴티티를 찾고자 했다”고 운을 뗀 뒤 “문학은 작은 구장이라 홈런과 주루, 이 두 가지를 살려 선수들을 특화시키려고 했다. 주루는 롯데와 삼성 감독을 맡았을 때부터 강조했던 것인데, 사실 SK에는 잘 뛰는 선수들이 적어 적용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홈런에 좀더 집중했다. 특히 웨이트트레이닝을 많이 시켰는데, 처음에는 인식이 덜 돼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집중적으로 웨이트트레이닝을 시킨 결과 선수들도 이해하고 따라오기 시작했다. 힘도 붙고, 비거리도 늘어났다”고 회상했다.

김용희 전 감독은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과 1984년 올스타전 최우수선수(MVP)였다. 지금은 감독 출신으로 더 익숙하지만, 그의 이름 앞에는 늘 ‘미스터 올스타’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김용희 전 감독은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과 1984년 올스타전 최우수선수(MVP)였다. 지금은 감독 출신으로 더 익숙하지만, 그의 이름 앞에는 늘 ‘미스터 올스타’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 좋은 타자에게 필요한 덕목은?

김 전 감독은 1982년부터 1989년까지 프로 8년간 534경기에서 타율 0.270, 61홈런, 260타점을 남겼다. 고질인 허리 부상 때문에 아마추어 시절의 화려한 명성과 경력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래도 그의 이름 앞에는 ‘미스터 올스타’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녔다. 1982년과 1984년 올스타전 최우수선수(MVP)를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1982년 올스타전은 3경기로 치러졌는데, 김 전 감독이 3차전에서 쏘아 올린 만루홈런은 MBC 청룡 이종도의 개막전 만루홈런, OB 베어스 김유동의 한국시리즈 6차전 만루홈런과 더불어 프로야구의 성공적 태동을 알린 기폭제였다. ‘아프지 않은 김용희’는 그 누구보다 무서운 타자였다.

타격 이론가로 해박한 지식도 갖춘 김 전 감독이 생각하는 ‘좋은 타자’의 조건은 무엇일까. 그는 “뛰어난 타자에게는 멘탈 측면에서 집중력과 결단력이 필요하다. 투수의 공에 집중하고, 어떤 공에 배트를 내야 할지 결정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결단력에 주목한다. 그는 “결단력이 없으면 타석에서 늘 주저한다. 훈련 때는 잘하다가도 경기에선 못하는 타자들이 그런 경우다. 또 좋은 타자라면 파워 향상은 늘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좋은 투수가 필요하다!

김 전 감독은 선수시절 남들보다 우월한 신체조건을 앞세워 홈런타자로 군림했다. 190㎝에 이르는 그의 키는 ‘거인 롯데’의 간판타자로 안성맞춤인 외형적 조건이었다. 지금 KBO리그에는 신체조건이 뛰어난 타자들이 훨씬 많아졌다. 또 그가 지론처럼 역설해온 ‘파워-업’에 더해 선수들 각자가 ‘벌크-업’에 집중한 결과 타자들의 능력이 몰라보게 향상됐다.

그러나 어느새 KBO리그는 심각한 ‘타고투저’에 시달리고 있다. 리그 평균 타율이 3할에 육박할 정도다. 원인과 해법을 놓고 다양한 얘기가 오가고 있다. KBO는 스트라이크존을 확대한 데 이어 공인구의 반발력까지 조정하기로 했다. 김 전 감독의 생각을 들어봤다.

“타고투저는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스트라이크존, 공인구의 반발력, 배트의 탄성 등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면 일시적 효과에만 그칠 수 있다. 결국은 선수들이 문제다. 류현진(LA 다저스), 김광현(SK) 같은 대형투수들이 잘 나오지 않는데, 특히 투수쪽 인적자원의 부족이 하나의 원인인 듯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하루아침에 시속 160㎞를 던질 순 없지 않나. 투수의 경우 제구력 개선과 구종개발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미국은 파워, 일본은 핀포인트 제구력이 특징인데 한국투수들에게는 과연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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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중, 팬이 즐거워야 한다!

김 전 감독은 2017년부터 경기감독관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해 4월 6일 잠실구장에서 예정됐던 NC 다이노스-두산전을 KBO리그 사상 최초로 ‘초미세먼지’를 이유로 취소시킨 경기감독관이 바로 그다. 처음 겪는 일이라 당시에는 이를 비난하는 팬들도 더러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용기 있는 결단’이었다.

김 전 감독은 “얼마 뒤 광주 경기(4월 15일 롯데-KIA 타이거즈전)도 초미세먼지 때문에 취소시켰는데, 그 때는 팬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이미 관중이 들어온 상태였고, 낮 12시까지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초미세먼지 수치가 올라가 오후 2시 넘어 취소를 결정했다”며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관중도 쾌적한 상태에서 경기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 ‘부산갈매기’의 꿈이 이뤄지는 날

김 전 감독은 롯데에서 선수, 코치, 감독을 모두 거쳤다. 롯데는 그의 야구인생과 궤적을 같이한다. 롯데 유니폼을 입고 1984년에는 선수로, 1992년에는 코치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다만 감독으로는 1995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이 최고다. 지금도 1995년은 안타까운 기억이다. 그리고 더 아쉬운 것은 1992년을 끝으로는 롯데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는 “롯데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것도 1999년이 마지막이다. 올해로 20년이 된다”며 씁쓸해했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 한편에는 ‘희망’이라는 두 글자를 힘껏 새겨 넣고 있다. 그는 “롯데 선수단 전체가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감독을 비롯해 코칭스태프도 많이 바뀌고 변화가 제법 큰데, 새 시즌 준비를 잘해 꼭 좋은 성적으로 팬들을 즐겁게 해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그의 바람이 ‘부산갈매기’의 힘찬 날갯짓을 타고 사직구장을 가득 메우는 날, 롯데의 한국시리즈 통산 3번째 우승은 찾아올 것이다.

● 김용희 전 감독은?

▲ 생년월일=1955년 10월 4일 ▲ 출신교=동광초~경남중~경남고~고려대(우투우타 내야수·키 190㎝) ▲ 실업선수 경력=육군경리단(1978~1980년), 포항제철(1981년) ※1973년 제28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최우수선수상 및 타격상(타율 0.548) ▲ 프로선수 경력=롯데(1982~1989년) ▲ 프로 통산성적=534경기 1783타수 482안타(타율 0.270) 61홈런 260타점 201득점 ※프로 첫 한 경기 3홈런 및 3연타석 홈런(1983년 10월 1일 구덕 삼성전) ▲ 지도자 경력=롯데 코치(1990~1993년·2002년·2004~2006년) 및 감독(1994~1998년)·감독대행(2002년), 삼성 코치(1999년) 및 감독(2000년), SK 코치(2012~2014년) 및 감독(2015~2016년) ▲ 감독 통산성적=976경기 452승23무501패(승률 0.474) ▲ 주요 수상경력=올스타전 MVP 2회(1982·1984년), 골든글러브 3회(1982·1983·1985년)

정재우 기자 ja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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