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최고의 선수를 육성하는 방법이 상습폭행입니까?

  • 스포츠동아
  • 입력 2019년 1월 23일 17시 22분


조재범(가운데)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가 23일 경기 수원지방법원에서 심석희를 비롯한 쇼트트랙 선수 4명 상습 폭행 등 사건에 대한 항소심 공판을 받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수원 | 뉴시스
조재범(가운데)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가 23일 경기 수원지방법원에서 심석희를 비롯한 쇼트트랙 선수 4명 상습 폭행 등 사건에 대한 항소심 공판을 받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수원 | 뉴시스
“최고의 선수를 육성하고 싶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를 상습 폭행한 혐의로 구치소에 수감 중인 조재범 전 대표팀 코치의 항소심 결심공판이 23일 수원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검찰은 조 전 코치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다.

조 전 코치는 이날 하늘색 수의 차림으로 법정에 섰다. 재판부가 입장을 밝힐 때는 법률대리인 오동현 변호사와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만, 시종일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가 한 말은 “최고의 선수를 육성하고 싶었는데, 내 잘못된 방식으로 선수들에게 상처를 줬다. 반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 변호사가 “(조 전 코치가) 잘못된 지도방식으로 선수들에게 상처를 준 점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 없음을 깨닫고 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최대한 선처해 달라”고 한 뒤였다.

조 전 코치는 “선수들에게 상처를 줬고, 반성하고 있다”고 했다. 이미 혐의를 인정하고 그에 따른 처벌을 기다리고 있는 터라 상황이 크게 바뀔 여지는 없다. 그러나 ‘최고의 선수를 육성하기 위해’ 폭행을 가했다는 조 전 코치의 한마디는 씁쓸하기 그지없다. 선수의 기량을 향상시키기 위한 수단이 폭력이었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기 때문이다. 이미 심석희를 포함한 선수 3명이 조 전 코치에게 상습 폭행을 당한 사실이 드러났다.

심석희 측은 조 전 코치의 성폭행 혐의도 주장하고 있다. 조 전 코치 측은 이를 극구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검찰은 일단 공소사실(상습상해)을 유지한 채로 재판을 마친 뒤 조 전 코치의 성폭력 혐의에 대해 면밀히 수사하고, 별도로 기소할지 검토키로 했다. 만약 성폭행 혐의가 밝혀진다면, “최고의 선수를 육성하고 싶었다”는 말도 거짓이 된다. 재판부의 판단대로, 성폭력과 상습상해는 전혀 다른 문제다.

종목을 막론하고 선수가 좋은 성적을 내면, 지도자는 그 덕을 본다. ‘선수 조련에 탁월한 지도자’라는 평가가 따라온다. 이는 체육계뿐만 아니라 일상에도 적용된다. 유교사상에 입각한 수직적 구조의 특성상 ‘상사’의 지시를 거스르기 어려운 게 현실인데, 지시가 욕설로, 욕설이 폭력으로 진화하는 악순환도 이번 사건의 연장선상에 있다. ‘맞고 싶지 않아서, 인격모독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 잘해야만 한다는 의무감은 오래갈 수 없다. 한 동계종목 지도자 A는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요즘도 선수를 때리는 지도자는 있다. 수직적 구조를 바꾸는 게 정말 쉽지 않아 보인다. 지도자의 폭행도 엄연한 직장갑질이다. 이를 막기 위해 법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 씁쓸하다”고 했다.

수원 |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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