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벤투 감독이 한국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것이 지난해 8월말이었다.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은 부임 후 4달 만에 치르는 메이저대회였다. 오는 2022년 카타르 월드컵까지 임기를 보장받은 벤투 감독 입장에서는 부임 초기에 해당한다.
이제 막 선수들이나 팀 분위기 나아가 그 나라의 각종 환경 등에 대해 감을 잡을 시점에 불과하다. 완벽한 상태로 대회에 임하기는 힘들었다는 의미다. 여기까지는 8강이라는 기대 이하의 성적으로 대회를 마친 벤투 감독을 위한 변명이다.
하지만 명백한 실패로 끝났다. 어떤 조건이더라도 대회는 대회이고 성적으로 모든 것을 평가받는 실전이다. 감독은 어렵다. 부임 후 딱 1경기를 패했는데 그것이 하필이면 토너먼트 8강이었고, 그 패배로 아시안컵에서 중도하차하면서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벤투 감독도 이런 냉정한 현실을 모르는 바 아니니 결과를 내기 위해 조바심을 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외부에 비춰졌다는 것은 바람직한 리더십이 아니다. 앞으로 갈 길이 먼데 벌써부터 너무 조급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59년 묵은 한을 씻어내고 이번에는 반드시 트로피를 가져오겠다는 각오로 아랍에미리트 땅을 밟았던 축구대표팀이 8강을 끝으로 초라한 귀국길에 올랐다. 한국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93위 카타르(16강 0-1 패)를 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우승이라는 게 쉬운 일은 아니나 8강은 허무한 결과다. 앞선 4경기도 내용상으로는 ‘이긴 것’ 외에는 딱히 칭찬할 것이 없었다.
부임 후 내내 꽃길만 걸었던 벤투호였기에 아쉬움은 더 컸다. 일단 축구 팬들 사이에서도 ‘이제 겨우 4개월’ ‘아직 감독을 평가하긴 이르다“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대회 내내 보여준 ’대처‘에 대해서는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많다.
부상자가 많은 것은 변수이고 악재이지만, 부상에서 돌아오지 얼마 되지 않은 이들을 대거 발탁하고, 부상자가 발생한 이후 대응이 미흡했으며, 애초 구상한 계획을 수행할 선수들이 쓰러졌는데도 고집스럽게 플랜A만 가동했던 것 등이 도마에 올랐다.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일이 꼬인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유연하지 못했던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김판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벤투 감독을 향한 찬사가 쏟아질 때 ”이제 시작이고 앞으로 더 지켜봐야한다. 어려운 시기가 왔을 땐 어떻게 극복하는지, 실제 토너먼트에서는 어떻게 팀을 이끌지 모를 일“이라면서 ”당장 내년 1월 아시안컵 결과에 따라 지금의 따뜻한 분위기는 확 바뀔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샴페인을 빨리 터뜨릴 필요는 없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그 우려가 현실이 됐다.
자신이 생각한 시나리오대로 흐르지 않자 초조한 모습이 나왔다는 것도 안타깝다. 조별리그를 마치고 안팎에서 이런저런 잡음이 흘러나왔을 때 벤투 감독은 ”10경기 동안 패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좋지 않은 이야기가 나오는데, 만약 패했을 때는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하다“는 말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일종의 ’발끈‘이었다.
벤투 감독은 지난해 8월 취임 기자회견에서 ”난 상대를 많이 존중하는 편이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교육을 받았다. 나와 함께 일하는 스태프도 미디어도 다 존중한다“면서 ”모든 감독들은 언론에 노출돼 있다. 이런 것은 감독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떤 비판을 받든 어떤 질문을 받든 난 성실히 답변할 책임이 있다“면서 열린 소통을 강조했던 것과는 각이 달라졌다.
벤치에서의 모습도 우려스럽다. 연장전까지 치르며 고전했던 16강부터 테크니컬에어리어에 서 있는 벤투 감독에게서 큰 액션이 자주 발견됐다. 선수들의 실수나 패스미스가 나올 때마다 벤치에 있는 벤치 쪽으로 고개를 돌려 이해할 수 없다는 강한 반응을 보였다. 실수한 당사자도 벤치의 선수들도 경직될 일이다. ’그걸 못해?‘라는 한숨이 들리는 듯했는데, 그것이 잘 안 되는 팀을 바꿔 달라고 부른 감독이다.
벤투도 성적이 목말랐을 것이다. 자신의 커리어에 ’대륙간컵 우승‘이라는 이력을 넣기 위해서도, 앞으로의 행보에 동력을 얻기 위해서도 이번 대회 결과가 중요했다. 당장의 성적에 방점을 찍었기에 기성용이나 구자철 등 베테랑들의 은퇴도 만류했고, 매 경기 변화 없이 고정될 틀로 불안요소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잃은 게 많은 대회가 됐다.
여론은 많이 식었다. 지나치게 베스트11을 고정시켜 선수단 내부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걱정스러운 이야기도 들린다. 잔잔한 바람에 돛을 단 것 같던 벤투호 앞에 거친 풍랑이 예고돼 있다. 그의 도전은 사실상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먼저 조급해지면 득 될 것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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