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은 2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독일 드레스덴(쇼트트랙), 노르웨이 하마르(스피드스케이팅)로 출국했다.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5차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였다.
최근 발생한 성폭력 관련 문제로 빙상계가 어수선한 상황, 이들에게 많은 시선이 쏠린 것은 당연했다. 선수들은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익숙한 얼굴을 보면 가벼운 인사를 나눈 게 전부였다. 그만큼 조심스러웠다.
조재범 전 국가대표팀 코치의 성폭행 혐의를 주장한 심석희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2019년 새해에 열리는 첫 국제대회 준비과정에 궁금한 점이 많았지만, 어떤 얘기도 들을 수 없었다. 경기력과 관련한 질문조차 불가능했다. 송경택 쇼트트랙대표팀 감독이 “밝은 분위기에서 잘 준비했다. 좋은 성적을 내겠다”고 한 게 전부였다.
송 감독 또한 빙상계를 강타한 일련의 사건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았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빙상계가 어수선한 상황에서 현장의 말 마디마디는 이슈가 된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스피드스케이팅대표팀도 마찬가지였다. 선수 개인 인터뷰는 불가능했다. 출국 직전 만난 스피드스케이팅대표팀 이석규 감독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귀국 후에 보자”는 말로 인터뷰를 대신했다. 쇼트트랙에서 촉발한 불미스러운 사건이 스피드스케이팅은 물론 빙상계 전체에 영향을 미친 셈이다.
스피드스케이팅 종별선수권대회가 열린 지난 17일 태릉국제빙상장을 찾았을 때도 현장 분위기가 흉흉했다. 당시 현장에서 만난 한 지도자는 침울한 목소리로 “링크를 한 번 보라. 참가선수도 확 줄었다. 분위기가 좋지 않다”며 “스케이트 하나만 바라보고 달려온 선수들도, 지도자들도 회의를 느낀다”고 안타까워했다.
무엇보다 최근 들어 ‘빙상계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확산하면서 이와 관련이 없는 기존 선수와 지도자들이 받는 피해가 작지 않다는 분석이다. 한 빙상인에게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다.
“성폭력 관련 이슈가 터지고 난 뒤 현역 선수, 지도자 할 것 없이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피해자가 누구냐’는 문의를 받는다”고 했다. 어수선한 분위기를 수습하기도 전에 2차 피해를 당하는 셈이다. 이들 입장에선 해당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실명을 언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피해자를 두 번 죽일 수 없다. 그에 따른 스트레스는 바이러스처럼 번진다. 그러다 보니 빙상인들이 침묵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요즘 빙상인들에게 안부를 물으면 먼저 한숨부터 내쉰다. “마음이 편치 않다”고 한다. 단순히 빙상계가 도마 위에 올라서가 아닌, 선수들이 두 번 죽는 상황이 안타까워서다. 익명을 요구한 피해자의 신상을 캐내려는 사람이 있는 한, 빙상인들의 침묵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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