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 하주석(25)은 2012시즌 신인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은 재목이다. 당시 그에 대한 평가는 ‘대형 유격수 유망주’였다. 공격력이 워낙 뛰어나 수비력을 가다듬으면, 대한민국 대표 유격수의 계보를 이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전면드래프트였던 당시 신인 지명 방식의 특성상, 메이저리그(MLB) 구단의 러브콜도 엄청났다.
그만큼 잠재력이 컸던 차세대 스타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데뷔 첫 두 시즌(2012~2013시즌) 동안 거둔 성적은 75경기 타율 0.167(138타수23안타), 1홈런, 4타점으로 초라했다. 국군체육부대(상무)에서 2년간 기량을 갈고 닦은 뒤에야 본격적으로 타격 재능을 뽐내기 시작했다. 전역 후 첫 풀타임 시즌인 2016년 115경기에서 타율 0.279(405타수113안타), 10홈런, 57타점을 기록하며 알을 깨트리고 나왔다. 이때부터 2018시즌까지 3년 연속 50타점 이상을 기록했으니 적어도 타격면에서 한 단계 성장한 것만은 분명했다.
문제는 수비였다. 하주석의 포지션은 유격수다. 유격수는 내야의 사령관이자 센터라인(포수~2루수·유격수~중견수)의 핵심이다. 어려운 타구를 그림 같이 잡아내는 화려함보다는, 쉬운 타구를 무난하게 처리하는 안정감이 더 중요하다. 박진만(삼성 라이온즈 코치)이 현역 시절 대한민국 최고의 유격수로 손꼽힌 이유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안정감을 지녔던 덕분이다.
냉정히 말하면, 2016~2017시즌 하주석의 수비는 안정감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쉬운 타구를 처리하는 데도 애를 먹었다. 그러나 시즌을 거듭할수록 수비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다. 유격수의 필수 덕목이 안정된 수비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간 약점으로 지적됐던 파트에서 확실한 업그레이드를 이뤄낸 점은 의미가 크다. 겐다 소스케(세이부 라이온즈)와 이마미야 겐타(소프트뱅크 호크스) 등 일본프로야구(NPB) 대표 유격수들의 플레이를 보고 벤치마킹하는 등의 노력도 한몫했다. 스포츠동아와 만나 유격수를 주제로 장시간 인터뷰를 진행한 하주석의 말 마디마디에 자신감이 묻어났다. 인터뷰를 진행한 날에도 베테랑 유격수 오비키 게이지(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수비에 대한 칼럼을 보며 흥미로워했다.
-유격수의 역할에 대해 묻고 싶다.
“학창시절에는 유격수가 화려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한화에서 주전으로 뛰면서 그 생각은 확실히 달라졌다. 유격수는 안정감과 믿음을 줘야 하는 자리다.” -유격수로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무엇인가.
“수비 자체가 쉽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발 빠른 타자들이 나왔을 때는 수비 동작도 더 빨라야 한다. 순간적으로, 미리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반 발자국도 안 되는 정말 긴박한 상황에 아웃과 세이프가 결정된다. 유격수가 실책을 하면, 확실히 다른 포지션과 견줘 팀이 받는 데미지가 크다.”
-코칭스태프와 전력분석팀의 도움도 있겠지만, 본인은 상대 타자의 타구 방향 등 데이터를 얼마나 고려하고 수비에 나서는지 궁금하다.
“2018시즌까지 10개구단의 타자들을 보고 배운 게 있다. 어느 정도는 머릿속에 넣고 잇다. 그리고 경기 당일 타자들의 배트 각도를 살피고, 타구가 파울이 됐을 때의 느낌 등도 조금씩 참고한다. 채종국 수비코치님께서도 많은 조언을 해주신다. 물론 우리 투수의 성향과 컨디션, 구위도 고려하고 수비를 해야 한다. 매 상황에 맞게 변화를 주는 편이다.” -포구 직후 공이 손에서 떠나기까지의 속도를 빠르게 하는 것도 안정감과 연결된다. 그 부분에서는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왔다고 봐야 하나.
“경지라는 표현까지는 무리인 것 같다(웃음).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KBO리그에도 좋은 유격수가 너무나 많다. 언급한 부분들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예전보다 나아지는 모습이 보이니 더 재미를 느끼고 있다. 더 확실하게 하고 싶다. 채종국 코치님과도 부족한 부분, 특히 가장 기본적인 부분 신경 써서 스프링캠프를 준비할 것이다. 완벽해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글러브의 위치를 최대한 낮춘 뒤 낮고 빠른 타구를 한결 편안하게 처리하는 느낌이다.
“시즌을 치르며 생각만큼 좋아지긴 했었다. 그런데 뛰다 보면 힘들다 보니 중간에 한 번씩 이를 망각하곤 한다. 그때마다 채종국 코치님께서 지적해주신다. 다행히 글러브를 내리는 동작은 한결 유연해진 것 같다. 몸에 익힌 것 같다.”
-유격수도 포수처럼, 다른 야수들과 연계플레이가 많다. 그 부분에 대한 어려움은 없나.
“어떤 포지션이든 풋워크가 죽으면 수비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비시즌에도 그 부분에 중점을 두고 훈련을 많이 한다. 채종국 코치님께선 지금도 ‘병살플레이를 할 때 동작이 크다’고 하시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스프링캠프 때 그 동작을 더 짧게 다듬어야 한다고 결론냈다. 준비동작도 바꿔보려고 한다.”
-어려운 부분만 물어본 것 같다. 유격수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포인트는 무엇인가.
“안정감이다.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 개인적으로는 외야수와 연계플레이를 통해 홈에 쇄도하는 주자를 잡아냈을 때 가장 큰 희열을 느낀다.”
-수비에서 가장 크게 향상된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많은 경기를 치르며 여유가 생겼다. 화려함보다는 기본적인 부분을 더 확실하게 하려고 하다 보니 그 속에서 많은 것을 느꼈고, 새로운 것도 찾았다. 일단 수비를 잘해야 유격수 포지션을 정상적으로 소화할 수 있다.” -그렇다면 2018시즌은 어떤 한해였나.
“아쉬움이 더 크다. 팀 성적이 좋아서 정말 행복했지만, 개인적으로는 타격에서 2016~ 2017시즌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냈다. 내가 잘했다면 팀이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못 했을 때 다른 선수들이 잘해준 게 가장 고맙다. 잘할 때 같이 잘했으면 팀 입장에선 더 좋았을 것이다. 그만큼 야구 인생을 통틀어 가장 힘들기도 했던 시즌이다.”
-스프링캠프가 다가온다. 2019시즌의 비전을 듣고 싶다.
“앞으로 개인적인 목표는 혼자 짊어지고 가려고 한다. 2018시즌에 워낙 성적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2019시즌에는 아쉬움을 남기지 않아야 한다. 정말 착실하게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