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전사들과 태극낭자들이 한데 모인 그곳은 평소와 달랐다.
11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 농구장에서 진행된 2019년도 훈련개시식은 왠지 어두운 분위기였다. 풀이 죽었고, 사기가 꺾여 있었다. 간간히 웃음꽃이 피어났지만 행사 참석자 대부분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2020도쿄올림픽이 성큼 다가왔지만 한국체육은 역대 최악의 위기를 맞이했다. 성폭력과 폭력 파문으로 뒤숭숭하다. 여자쇼트트랙에서 촉발된 체육계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은 이제 동·하계 전 종목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은 동·하계 종목 국가대표 선수 및 지도자 366명을 포함한 체육계 관계자 570여명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선수촌에서 발생한 불미스러운 사태로 선수들과 지도자들의 사기에 안 좋은 영향을 끼쳤다.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단상에 선 선수단 대표와 주요 인사들의 입에서는 유난히 어둡고 무거운 단어가 많이 등장했다. ‘위기’와 ‘난관’ 등이 자주 언급됐다. “어려운 여건에서 훈련하는 모든 선수단에 사죄드린다. 내년이면 체육회 창립 100주년이 되고, 올해는 100번째 전국체육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된다. 그동안 체육계가 수많은 위기를 극복했듯이 이번에도 슬기롭게 이겨내리라 믿고 싶다”고 이 회장은 말했다.
국가대표 훈련개시식은 매년 1월 체육회가 주관하는 연례 가장 큰 이벤트다. 항상 언론에 공개하면서 한국스포츠를 이끌어가는 국가대표들이 밝은 내일과 희망을 국민들에 약속하는 자리였다.
올해는 좀 달랐다. 악화된 여론에 비공개 행사로 진행하려 했다. (성)폭력 파문이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선수단을 보호해야 한다는 체육인들의 목소리도 높았다. 인사 난맥으로 거듭 늦어진 진천선수촌장 선임도 맞물렸다. 결국 개최시기를 2월로 연기하게 됐다.
국가대표 훈련개시식은 국가대표 선수들과 체육인들의 신년인사를 시작으로 체육인 헌장 낭독, 선수대표(남자양궁 김우진, 여자사이클 나아름)의 선서, 체육인 자정결의문 및 체육현안 성명서 낭독 순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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