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쇼트트랙 ‘여제’ 심석희에 대한 조재범 전 대표팀 코치의 (성)폭력 사태로 촉발된 일련의 비위 문제로 한국체육에 전면 쇄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문화체육관광부를 중심으로 여성가족부와 교육부, 국가인권위원회 등 주요 정부 기관들이 체육계 비위 근절을 위한 다양한 대책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 대한체육회-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분리 ▲ 합숙(훈련)소 폐지 ▲ 소년체전 폐지 등이 거론됐다.
하지만 체육계의 시선은 곱지 않다. 문제를 반성하고 환부는 도려내야 한다는 점에는 인정하지만 체육계의 상생과 반대의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생활체육 활성화를 위해 엘리트 체육의 비중을 낮추는 정책에 대한 의문이다.
체육인들은 “즐기는 체육과 직업인으로의 체육활동 모두 존중받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엘리트로 성장하려는 청춘의 꿈까지 짓밟을 권리가 정부에는 없다고 본다. 학원체육 운동부와 합숙소 폐지도 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체육계의 입장이다. 한 인사는 “빈대를 잡으려다가 초가삼간을 전부 태울 이유는 없다”고 꼬집었다. 대한체육회와 KOC 분리의 경우, 정부의 손쉬운 관리를 위함이 아니냐는 주장도 많다.
11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진행된 2019년도 국가대표 훈련개시식에서 체육계의 냉랭한 기류가 확인됐다. 체육회노동조합과 국가대표지도자협의회, 각 회원종목단체 인사들은 자정 결의문을 통해 “각종 비위행위와 성폭력 사건으로 많은 실망을 안겼다. 참담한 심경으로 사죄한다. 정부의 체육 혁신에 적극 참여하겠다”면서도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에는 반대했다. 체육회 이기흥 회장도 “(KOC 분리는) 쉽게 접근할 사안이 아니다. 공론의 장이 마련된 후 논의해도 된다. 남북단일팀, 올림픽 공동개최가 추진되는 지금은 더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논란의 여지가 남아있지만, 일각에서 제기된 책임론에 대해 “의무를 다하는 게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사퇴의 뜻이 없음도 분명히 했다.
신치용 신임 선수촌장도 사견을 전제로 “소년체전은 한국스포츠의 근간이다. 합숙도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강한 정신력과 체력, 팀워크를 위해 합동 훈련이 필요하다”면서 “문체부등과 소통을 해야 한다. 서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선수촌 내 숙소동(화랑관) 1층의 일부 공간에 마련된 선수인권상담실을 책임질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겸 체육회 선수위원회 위원장도 “체육인들 스스로 반성하고 낡은 시스템을 버려야 한다. 개혁도 필요하다. 다만 선수 및 지도자들의 의견도 들어봐야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