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야구 심판이라니, 신기한가요?” 사회인야구·소프트볼 심판인전문숙 씨(52·사진)는 올해로 21년째 ‘풀뿌리 야구’에서 심판을 보고 있다. ‘사회인야구 좀 한다’ 하는 사람은 다 아는 베테랑이다. 매년 2월 중순이나 3월 초부터 지역별 리그를 치르는 사회인야구 인구는 전국적으로 약 60만 명이다. 현재 사회인야구 커뮤니티 ‘게임원’에 등록된 인원이56만 명인데 90%가 게임원에서 활동하고 있단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당시 회사 동호회 위주로 생겨난 사회인야구는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금메달 획득 이후 급격히 성장했다. 따뜻한 계절 휴일이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야구장에 야구가 펼쳐진다. 평일 새벽이나 밤에도 경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1986년 숙명여대 체육교육과에 들어간 전 씨는 소프트볼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소프트볼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 소프트볼 국가대표로 출전한 그는 인기가 저조한 소프트볼을 널리 알릴 방법을 궁리하다 1999년부터 야구·소프트볼 심판으로 나섰다. 2005년에는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에서 국제심판 자격까지 취득했다. 이 자격을 가진 사람은 현재 우리나라에 5명뿐. 이 중 여성은 전 씨뿐이다. 그는 “미국, 일본 등 소프트볼 선진국은 소프트볼만으로 선수 및 심판 경력을 쌓을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쉽지 않다. 야구와 소프트볼을 병행하며 경험을 쌓다가 야구에도 깊이 빠져들게 됐다”고 말했다.
심판 활동 초기 여성 심판으로서 고충도 많았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대놓고 무시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경기를 시작하면 선수들끼리 ‘야, 여자래. 여자 심판이야’라고 얘기하는 걸 몇 번 들었어요. 그러고 나면 제 판정을 따르지 않고 자기들 나름대로 판단하는 일도 있었죠. 지금은 인식이 많이 바뀌어서 그런 일은 거의 없어요”라고 말했다.
심판으로 살아남기 위해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느꼈던 전 씨는 2010년 자비를 들여 미국 플로리다의 짐 에번스 심판학교에서 5주간의 교육과정을 수료했다. 1990년 설립된 짐 에번스 심판학교는 심판 재교육으로 명성이 높다. 전 씨는 “당시 비행기 요금과 교육비, 체재비 등 700만 원 정도를 들여 다녀왔다. 영어를 30% 정도밖에 알아듣지 못했지만 다시 볼 엄두가 안 날 정도로 많은 메모를 남기며 공부했다. 나만의 심판 철학을 세우는 시기였다”고 말했다.
전 씨는 시즌이 시작되면 매주 2경기, 연간 약 100경기에서 심판을 본다. 그는 “인프라가 비교적 잘 갖춰진 수도권에 비해 지방은 심판 수도 적고 경기장 사용에도 어려움이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경기장을 짓고 있기는 하지만 담당 공무원들이 자주 바뀌다 보니 혼선을 초래하고 있다. 사회인야구 발전을 위해 관리 책임자의 전문성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 씨는 지난해부터 야구심판아카데미(UA)에서 사회인야구 심판 교육을 총괄하는 교육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고 민준기 당시 대한야구협회 심판장에 의해 설립된 UA는 지금까지 수백 명의 야구 심판을 길러내 사회인야구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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