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생각해도 떨려요. 촬영장을 향해 걸어가는 게 타이거 우즈가 연습을 하고 있어 잘못 본줄 알았어요. 가까이 다가서 봐도 믿어지지 않았죠.”
어느새 열흘 가까이 지났지만 박성현은 여전히 지금 바로 자신의 앞에 우즈가 있는 것처럼 설렌 듯 보였다. 14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메인 스폰서 계약식에서 광고 촬영을 위해 우즈를 만났던 일을 떠올리던 순간이었다. TV나 사진으로나 보던 대스타와 마주한데 따른 수줍은 미소까지 머금은 박성현은 “악수도 하고, 말도 했는데 꿈만 같다. 평생 못 잊을 것 같다. 생각보다 말랐다”며 웃었다.
우즈는 박성현의 우상이다. 골프를 시작하면서부터 우즈의 플레이에 환호하며 일거수일투족을 쫓기도 했다. 그런 우즈를 처음으로 대면했으니 얼마나 가슴이 뛰었을까.
이런 사연을 전해들은 우즈도 박성현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박성현은 “우즈가 ‘열심히 하되 즐기면서 해라’, 자신을 위한 골프를 해라‘ 는 말을 해줬는데. 앞으로 좌우명으로 삼고 싶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어린 나이부터 골프에만 매달리다 보니 자칫 슬럼프나 부상이 오면 헤어나기가 쉽지 않다. 선수 수명도 짧다. 비시즌에도 골프채를 껴안고 사는 경우가 많다. 박성현도 이런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인지 우즈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더 고맙게 느껴진다.
한국 골프의 개척자 박세리도 언젠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전설 낸시 로페스에게 비슷한 취지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골프 대회장에 가면 꽃도 보고 멀리 산도 쳐다 보라”는 것이었다. 운동에만 몰입하지 말고 뭔가를 즐기라는 의미였다.
박성현은 이젠 정상에서 멀어진 줄만 알았던 우즈가 40대 중반에 접어든 지난해 투어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부활한 사실을 누구보다 반겼다. 그는 “(우즈 우승 모습에) 눈물이 났다. 항상 노력하는 자세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났다”고 말했다.
박성현은 우즈에게 레슨받은 사실도 자랑했다. “내 스윙을 지켜보더니 ’공의 위치를 조금 왼쪽에 두고 쳐보라‘고 하더군요. 원래는 공을 몸 안에(가운데 부분) 두고 치는 편이거든요.”
공위치 변경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일이 없었지만 우즈의 말에 시도해봤다. “공을 옮겨도 타이밍을 맞추는 요령을 알았다. 하지만 공 한 개 정도 옮기는 것은 여전히 어색해 반 개 정도 옮겼다. (웃음)”
박성현은 이번 시즌 우즈와 같은 테일러메이드 ’M5‘ 드라이버를 사용한다. 박성현은 “우즈와 같은 채를 쓴다는 것도 신기하다. 비거리 늘리는 게 목표였는데 잘 맞는다”고 설명했다.
우즈는 전성기 시절 골프 선수로는 해마다 수입 랭킹 1위를 달렸다. 상금 뿐 아니라 천문학적인 액수의 스폰서 수입이 뒤따랐다. 박성현은 본격적인 시즌 출격에 아서 역대급인 2년 간 70억 원으로 추산되는 메인 스폰서 계약도 마쳤다. 후원 기업만도 10개에 이른다.
박성현은 평소 빨간색 티셔츠를 입으면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국내 투어 10승과 US여자오픈 등에서 우승할 때 그는 흰색이나 노란색 옷을 입었다. 그랬던 박성현이 2017년 LPGA투어 캐나다퍼시픽오픈에선 붉은 색 티셔츠를 입고 우승했다. 당시 우승 전날 박성현은 인스타그램에 2005년 마스터스에서 붉은색 티셔츠를 입고 환호하는 우즈의 사진과 함께 ’보고 싶다. 당신 모습‘이라는 글을 올렸다. 마지막 날 상대를 공포에 떨게 한다는 우즈의 트레이드마크인 레드 셔츠 기운이 박성현에게도 전달됐을지 모를 일이다.
우즈와의 추억을 뒤로한 채 박성현은 17일 태국으로 출국해 21일부터 열리는 LPGA투어 혼다 타일랜드에 출전한다. 메이저 우승을 포함해 시즌 5승을 목표로 삼은 박성현이 올해 처음 오르는 무대다. 태국은 우즈 어머니 고향이기도 하다. 박성현은 “지난해 보다 시즌 준비가 잘 됐다. 기대감이 크다”고 말했다. 박성현이 우즈에게 축하 메시지를 받을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