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 송광민(36)은 지난겨울 적잖은 갈등을 겪었다. 프로 데뷔 12년 만에 행사하는 프리에이전트(FA) 권리가 원인이었다. 1월초 필리핀 클락으로 개인훈련을 떠났지만, 에이전트에게 일임한 FA 계약은 순조롭지 못했다. 결국 본인이 직접 나섰다.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로 출국하기 나흘 전인 1월 27일 2년 총액 16억 원에 한화와 합의했다. 옵션 총액이 8억 원에 달하는 기형적 계약이었다.
10년 넘게 한화에 헌신한 만큼 섭섭할 법도 했지만, 계약을 마친 뒤에는 홀가분한 심경을 전했다. “한화를 떠난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며 ‘원 클럽 맨’으로 뼈를 묻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FA 외야수 이용규와 최진행의 잔류 계약이 뒤따랐고, 난항을 거듭하던 투수 송은범의 연봉 재계약도 이어졌다. 송광민의 계약이 마치 물꼬처럼 작용한 듯했다.
‘육성’을 기조로 내건 한화의 오키나와 캠프에는 신인들의 함성도 뜨겁다. 송광민이 버틴 3루에도 똘똘한 고졸 신인 한 명이 붙었다. 지난해 8월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1라운드에 뽑힌 경남고 출신 노시환이다. 송광민과는 무려 열일곱 살이나 차이가 난다. 향후 2, 3년간은 송광민이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겠지만 노시환을 비롯한 후배들이 자리를 잡도록 돕는 것 도 이제는 그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11일부터 시작된 연습경기에서도 노시환과 3루수 출전 기회를 나누고 있다.
이처럼 그를 둘러싼 모든 여건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방심까지는 아니더라도 매 순간 집중력을 잃지 않아야 미완성 FA 계약의 남은 퍼즐을 온전히 맞출 수 있고, 은퇴 순간까지 제 몫을 할 수 있다.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송광민 또한 한 시즌 나름대로 설정한 목표를 향해 스프링캠프에서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다행히 출발이 좋다. 김태균, 이성열, 제라드 호잉 등 주전급 타자들 대부분이 아직은 예열을 덜 마친 듯 18일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1군과의 연습경기까지 4차례 실전에서 신통치 않은 모습을 보였지만 송광민은 예외였다. 3루수 또는 지명타자로 4경기에 모두 선발출전해 꼬박꼬박 1안타씩 뽑았다. 팀 타선이 주니치 1군과의 두 차례 대결에서 각각 5안타, 4안타로 침묵할 때도 송광민의 방망이는 날카롭게 돌았다. 묵묵히 제 갈 길을 가는 송광민다운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