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 역사가 40년에 달해가며 ‘스토리’를 갖춘 야구인 2세도 점차 늘어가고 있다. ‘바람의 손자’ 이정후(21·키움 히어로즈)가 가장 큰 성공사례로 꼽힌다. 이외에도 박철우 두산 베어스 벤치코치의 아들 박세혁(29·두산), 김민호 KIA 타이거즈 야수총괄의 아들 김성훈(21·한화 이글스) 역시 야구인 2세 신화를 준비 중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후광을 마냥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이정후는 “이종범 덕에 야구를 편하게 한다는 시선이 있었다. 그것 때문에 더 독해졌다”며 “아버지가 학창 시절에 내 야구를 보신 적이 한 번 밖에 없다”고 씁쓸해했다.
이종범 현 LG 육성총괄의 당시 기분을 지금 이호준(43) NC 다이노스 코치가 느끼고 있다. 이 코치의 아들 동훈(17) 군은 올해 강릉고등학교 2학년이다. 아버지의 길을 따라 걷고 있지만 이 코치는 미안한 마음뿐이다. 이 코치는 “아빠로서, 야구 선배로서 따뜻한 말 한마디만 건넬 뿐 기술적인 이야기는 전혀 안 한다”며 “지난해 12월 강릉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서로에게 좋은 시간이었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그는 “직구 하나 날리겠다. 야구인 2세라서 입는 손해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야구인 2세 A가 B보다 근소하게 실력이 앞설 때 감독이 A를 기용한다면, B의 학부모가 ‘특혜’를 따진다. 월등히 뛰어난 실력이 아닌 이상에야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동훈 군 역시 아버지가 이호준 코치라는 사실을 최대한 숨겨왔다. 이 코치는 “아빠가 도움이 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작아지게 만드는 것 같다”고 씁쓸함을 숨기지 않았다. 이호준 코치는 전설적 타자이기 전에 한 명의 아버지다. 아들이 그라운드를 누비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지만 욕심은 꾹 누른다.
그럼에도 이 코치에게 동훈 군은 자랑스러운 아들이다. 지난해 문득, ‘야구하는 거 행복해? 힘들진 않아?’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동훈 군은 밝은 미소로 그렇다고 답했다. 중학교 1학년, 늦은 나이에 야구를 시작했지만 자신의 삶을 즐기고 있다는 대답에 이 코치도 뿌듯함을 느꼈다. 초등학생 시절 성적이 제법 괜찮았던 아들이 그토록 좋아하던 야구를 시작하게 해달라고 했을 때 선뜻 말리지 못했던 것도 같은 이유다. 아버지 이호준이 바라는 것은 결국 자식의 행복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들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만 자라달라’고 하지 않나.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 와서 1차지명이나 대학 진학 등을 욕심낸다? 지금처럼 행복하게,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모습이면 족하다. 다른 것들은 옵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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