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열린 2019 서울국제마라톤 겸 제90회 동아마라톤. 잠실대교를 막 건넌 38km 지점, 멀리서 들려온 이름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모르는 얼굴이었다. 배번표에 적힌 이름을 보고 응원을 건넨 시민은 “비타민C를 보충해야 한다”며 달려와 금귤 한 개를 손에 쥐어주었다. 발목 통증과 체력 저하로 울상이었던 기자는 금귤을 껍질 채 입에 넣고 힘을 내 달리기 시작했다.
기자는 이날 동아마라톤에서 생애 첫 42.195km 풀코스를 경험했다. 코스 곳곳에서 시민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화이팅”, “멋지다”라며 응원의 말을 건넸다. 시민들은 작은 테이블에 음료와 간식을 마련해두는가 하면 뿌리는 파스 여러 통을 준비해 참가자들의 다리를 식혀 주기도 했다.
국내 단일 마라톤 대회 역사상 가장 많은 인원(3만8500명)과 함께한 풀코스는 뜻 깊은 경험이었다. 교통 체증을 뚫고 출근하던 본보 사옥 앞 태평로가 차량 한 대 없이 탁 트인 모습을 볼 때는 묘한 해방감까지 느껴졌다. 이른 아침부터 북적이던 광화문 광장 출발선에서는 엘리트 선수부터 마스터스 A~E그룹까지 모든 참가자들이 출발하는 데만 30분이 걸렸다. 왕복 10차선 도로를 알록달록한 운동복의 물결이 가득 채웠다.
대회 당일은 구름 한 점 없이 상쾌했다. 미세먼지는 보통 수준, 기온도 8도 내외로 선선해 달리기 더없이 좋았다. 5km까지 몸이 덜 풀린 듯 무거웠으나 이내 좋은 날씨와 들뜬 대회 분위기에 몸이 달아올랐다. 20km 지점까지는 이상하리만치 컨디션이 좋았다. 휴대용 스피커로 신나는 클럽 음악을 틀고 달리는 무리가 있어 따라 달렸다. 1km당 6분40초 페이스로 생각했던 속도보다 조금 빨랐지만 몸 상태가 좋아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초보 마라토너의 오산이었다. 오버페이스의 여파는 격하게 찾아왔다. 28km부터 오른쪽 발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30km 지점, 발목에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지며 저절로 ‘악’ 소리가 나왔다. 신발끈을 조금 더 단단히 묶으니 통증이 다소 줄어들었다. 그래도 30km나 뛰었는데(태어나서 제일 멀리 뛰었는데) 이왕이면 완주하고 싶었다. 준비 과정에서 들은 “30km까지만 뛰면 어떻게든 골인은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때 멈췄어야 했다. “어떻게든 골인은 한다”고 했을 때, ‘어떻게든’이 무슨 뜻인지도 물었어야 했다. 아픈 발목에 체중을 싣지 않으려고 절뚝이며 뛰다보니 반대쪽 허벅지가 아팠다. 통증은 허벅지에서 허리를 타고 어깨까지 올라왔다. 걸어서라도 들어가자는 생각이었지만 35km부터는 걸을 때도 발목이 아팠다. 7km밖에 안 남았으니까, 그래도 5km만 가면 되니까, 스스로를 달래며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누가 또 그랬다.(첫 마라톤을 준비한다고 하면 조언을 많이 듣는다) “40km부터는 골인 지점이 가까우니 몸이 가벼워진다”고.
이번에도 틀렸다. 안 가벼웠다. 2km가 그렇게 먼 거리였던가. 마침내 몸이 가벼워진 것은 잠실주경기장에 들어서고부터였다. ‘이제 끝났다’는 안도감에 힘을 짜내어 달릴 수 있었다. 응원 나오신 부모님이 함께 달려주었다. 기록은 5시간51분16초. 꼴찌에 가까웠지만 많은 사람들이 남아 박수와 축하를 보내주었다. 잠시 잔디에 앉아 햇볕을 쬈다.
기자는 ‘뉴발란스 동아마라톤 풀코스 10주 프로그램’을 통해 풀코스를 준비했다. 10주간 경험한 마라톤은 ‘나의 페이스’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참가자 중 평생 10km도 제대로 달려보지 않은 채 프로그램에 발을 들인 사람은 기자뿐인 듯했다. 조급한 마음에 다른 사람들의 훈련을 따라가려고 무리하면 탈이 났다.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양을 꾸준히 하는 게 중요했다.
“풀코스를 한번 뛰고 나면 반드시 다시 뛰고 싶어진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가장 믿음이 안 가는 조언이었지만 완주 후 잠실보조경기장 잔디밭에 앉아 쉬면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과 마주보고 앉아 시시콜콜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다른 완주자들과도 축하를 주고받았다. ‘인증샷’을 찍어 친구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한없이 늘어져도 될 것 같은 안도감이 밀려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