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캐피탈 세터 이승원(26)의 얼굴에도 슬며시 미소가 찾아들었다. 남몰래 이어온 마음고생 끝에 소속팀을 챔피언결정전 우승으로 견인하는 ‘힘’을 얻어서다.
이승원이 진두지휘한 현대캐피탈은 22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대한항공과의 챔피언결정전 1차전서 세트스코어 3-2(30-32 25-18 23-25 25-22 15-10) 승리를 거뒀다. 부상 투혼이 빛났다. 이승원은 1세트 중반 최민호에게 오른발을 밟혀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이원중과 교체됐지만, 이내 2세트부터 정상 출전해 끝까지 코트를 지켰다. 특히 전광인(22점)~문성민(21점)~크리스티안 파다르(20점)로 이뤄지는 삼각편대의 공격력을 살뜰히 살려내며 제 몫을 했다.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도 이승원의 속마음을 잘 알고 있다. 경기 후 만난 최 감독은 “1세트에 발등을 밟힌 뒤 발을 딛지 못하겠다고 할 만큼 통증을 호소했다. 아픈 것도 참고 마지막까지 잘해줬다”고 고마워했다. 이어 “아마 정규리그에서의 아픈 기억들을 포스트시즌에서 풀고 싶었던 것 같다”며 “그런 간절한 마음이 승원이에게 힘을 준 것 같다”고 했다.
무거운 책임감이 줄곧 이승원을 따라다녔다. ‘어벤져스’라 불리는 리그 정상급 공격진을 직접 이끌어야 했던 까닭이다. 경기 결과에 따라선 비난의 눈초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최 감독으로부터 강한 질책을 받은 날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가장 답답했던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이승원은 “항상 잘하고 싶었는데, 부족한 부분이 많아서 아쉬웠다. 잘하려고 해서 잘해지는 것이 아니더라”고 돌아보며 “감독님도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런 이야기를 하셨겠나. 주위에서도 많이들 놀렸다. 이제는 마인드 컨트롤을 잘하고 있다. 조금 더 강인한 마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임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카드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서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펼친 것이 변화의 기점이 됐다. 이승원 역시 명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분명 이전과는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느끼고 있다. 그는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좋은 느낌이 있다”며 웃었다. 이승원을 지켜보던 동료들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주장 문성민은 “그동안 너무 잘하려다보니 욕심이 앞섰던 것 같다. 모든 선수들이 승원이를 믿고 있다. 덕분에 하나가 되는 힘이 생겼다”고 반겼다.
이승원도 동료들의 저력을 믿고 있다. 특히 센터 최민호가 군 복무를 마치고 가세하면서 활용할 수 있는 공격 옵션이 늘었다. 이승원은 “선수들이 워낙 출중한 능력을 갖고 있다. 그저 적재적소에 동료들을 믿고 올리고 있다”며 “특히 민호 형은 범실이 없어서 속공을 올려주면 득점률이 높다. 형에게도 안정적으로 올릴 수 있고, 민호 형 덕분에 다른 공격수들도 활용할 수 있어 내게 좋은 옵션이 되어주고 있다”고 기뻐했다.
이승원은 스스로 깊은 어둠을 헤쳐 나왔다. 자신의 ‘빛’을 되찾은 그는 현대캐피탈의 네 번째 별에 가까워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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