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FC서울의 훈련장이 위치한 구리 챔피언스파크에서 만난 최용수 감독은 의외(?)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주로 커피나 음료수를 마시던 예전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었다.
다기세트를 펼쳐놓고 차를 음미하던 최 감독은 “이것을 마시면 차분해진다. 차를 따르며 생각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기는 것 같다”고 말한 뒤 “올해처럼 마음을 비우고 시즌을 치르는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계속 마음을 비워야한다”고 말했다.
잘 알다시피 지난해 FC서울은 최악의 부진을 경험했다. 시즌 내내 갈지 자 걸음을 걷던 서울은 그러다 말겠지 싶은 와중 계속 추락했고 급기야 11위로 정규리그를 마무리,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르는 벼랑 끝 승부까지 경험했다. 시즌 막바지 구단의 SOS를 받아들여 친정으로 돌아온 최용수 감독도 그야말로 십년감수했다.
절치부심, 동계훈련에 매진했으나 새 시즌을 앞두고 서울을 향해 긍정적인 전망을 내리는 전문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상위권 라이벌 클럽들인 전북현대나 울산현대 등은 물론 심지어 경남FC와 인천유나이티드 등 시민구단들도 알차게 선수를 영입했던 것과 달리 서울은 마땅한 보강이 없어 보인 까닭이다.
우즈베키스탄 대표팀 미드필더 알리바예프를 영입하고 J리그에 임대로 보냈던 오스마르가 되돌아온 것 외에는 잠잠했다. 이적 시장 막바지에 세르비아리그 득점왕 출신의 페시치가 가세했다는 것은 기대감을 품게 하는 요소였으나 전체적으로는 빈약해 보였다. 그랬던 서울이 뚜껑을 열자 예상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개막전에서 포항을 2-0으로 잡아낸 서울은 2라운드서 성남을 1-0으로 꺾었고 3라운드에서 제주와 0-0으로 비기면서 2승1무로 상주(3승)에 이어 2위에 올라 있다. 오는 30일 상주와의 맞대결에서 승리하면 선두까지 올라설 수 있다.
일단 최용수 감독은 “지금의 순위는 크게 와 닿지 않는다. 많은 의미를 부여할 시점도 아니다. 앞으로 갈 길이 멀고 위기도 많을 것이다. 우리는 도전자”라는 말로 낮은 자세를 유지했다.
그의 말처럼 아직 호들갑을 떨 시점은 아니다. 다만 ‘내용’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기력이 크게 좋아진 것은 아니다. 지난해 서울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혔던 결정력은 여전히 갈증이 있다. 페시치의 컨디션이 완전치 않아 지난해 측면수비를 담당하던 박동진이 박주영과 최전방에 배치되는 등 자원도 풍족하지 않은 상황이다.
주목할 점은 무실점이다. 지금까지 3경기 무실점은 서울이 유일하다. 모든 선수들이 90분 내내 끊임없이 뛰어다니면서 근성을 발휘하고 있다. 팬들이 가장 많이 변했다고 칭하는 점 역시 ‘많이 뛴다’에 맞춰져 있다.
팀의 리더인 박주영은 “공격수라고 공격만 생각하면 곤란하다. 우리가 수비할 때는 공격수들도 충분히 수비에 가담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뒤 “모든 선수들이 팀 속에서 뛰어야하고 그럴 때만이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소위 말하는 ‘원팀’으로 거듭난 서울이다.
최용수 감독은 “다른 것은 그렇게 칭찬할 것이 없지만 선수들의 자세는 조금 달라진 것 같다”고 말한 뒤 “우리 파울이 많다. 이것이 가장 반가운 점”이라고 의외의 지점을 소개했다. 서울은 3경기에서 총 50개의 파울을 범했는데, 울산(57개) 성남(54개)에 이어 3번째로 많다.
최 감독은 “우리가 파울이 많은 것은 그만큼 전방 압박을 강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 뒤 “많이 뛰고 또 적극적으로 뛴다. 이전까지 우리 선수들은 너무 예쁘게만 공을 차려했다. 도전자면 도전자답게, 투지 넘치고 최선을 다하는 맛이 있어야했다. 이제 조금은 생각이 달라진 것 같다”는 말로 작은 칭찬을 더했다.
팀의 막내급인 21세 수비수 윤종규는 “올 시즌을 앞두고 절대로 작년 같은 모습을 보이지 말자고 감독님이 계속 강조하셨는데 선수들에게 잘 전달된 것 같다. 그런 각오가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주영은 “확실히 지난해보다는 끈끈해진 것 같다. 고참들 뿐만 아니라 후배들도 알아서 뛴다.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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