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장현의 피버피치] ‘오뚝이’ 여민지, 더 아프지 말고 프랑스에서 활짝 웃어요!

  • 스포츠동아
  • 입력 2019년 4월 12일 05시 30분


한국 여자 축구대표팀 여민지. 스포츠동아DB
한국 여자 축구대표팀 여민지. 스포츠동아DB
여자축구대표팀 여민지(26·수원도시공사)의 이름을 처음 접한 시기는 늦여름 무더위가 한창이던 2010년 9월이었다. 북중미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펼쳐진 국제축구연맹(FIFA) 17세 이하(U-17) 여자월드컵이 막 시작될 때였다.

대회가 개막하고 남아공~멕시코를 연이어 격파했을 때조차 ‘그런가보다’ 싶었다.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독일에 0-3으로 완패했을 땐 ‘당연하지’ 했다. 생각을 바꾸기까지 시간은 길지 않았다. 토너먼트에서 나이지리아(8강), 스페인(4강)을 모조리 꺾었다.

그 무렵, 한국은 난리가 났다. FIFA 주관 대회 우승을 목전에 두다니…. 여민지도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었다. 독일전만 빼고 매 경기 득점포를 가동했던 여자축구의 파릇한 샛별이었다. 한일전으로 열린 결승전. 여민지가 축구를 시작한 경남 창원 명서초 강당에서 태극소녀들의 승부차기 드라마와 엄마들의 진한 눈물을 봤다. 한국 축구의 사상 첫 FIFA 주관대회 우승이었다.

또 다른 감동도 있었다. 축구에 모든 것을 건 어린 소녀의 6권짜리 축구일기다. 스포츠동아는 이를 입수해 단독 연재했다. 이듬해 책으로까지 출판된 여민지의 일기에는 인상적인 글이 있었다.

‘아프리카의 아침, 가젤과 사자가 잠에서 깬다. 가젤은 사자보다 빨리 달리지 않으면 죽는다는 걸 안다. 사자는 가젤을 앞지르지 못하면 굶는다는 걸 안다. 그래서 둘은 온 힘을 다해 뛴다. 네가 사자이든, 가젤이든 마찬가지다. 해가 떠오르면 달려야 한다!’

이렇듯 어릴 적부터 여민지는 절박한 가젤처럼, 때론 성난 사자처럼 뛰었지만 불운도 참 많았다. 2008년 4월 오른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됐다. 그해 10월 뉴질랜드에서 개최될 U-17 여자월드컵을 준비해온 그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부상은 끊임없이 괴롭혔다. 잊을 만하면 다쳤다. 생각보다 A매치 횟수(34경기·12골)가 적은 배경에 질긴 부상이 있었다. 2015년 캐나다에서 개최된 여자월드컵 직전 연습경기에서 십자인대를 다쳤다. 대회 출국을 나흘 앞두고 입은 부상. 간혹 주고받던 문자 메시지를 더 이상 보내지 못한 시기도 그 무렵이다. 미안해서, 또 안타까워서.

그래도 분명한 사실이 있다. 여민지는 부상에 무릎 꿇지 않았다. 치열히 자신과 싸운 결과, 2017년 4월 여자 아시안컵 최종예선 이후 2년여 만에 태극마크를 다시 달았다. 다가올 6월 프랑스에서는 여자월드컵이 열린다. 한국도 참가하고, 여민지도 최종엔트리 승선을 노린다.

남자대표팀이 2018러시아월드컵을 준비하던 지난해, 베테랑 태극전사 누군가 그랬다. “월드컵에서 품은 한은 월드컵으로 털어야 한다더라”고. 오랜 기다림과 꿈을 이제 펼칠 때가 됐다. 여민지는 어릴 적 일기에 “적에게 악몽과 같은 선수, 상대가 가장 두려워하는 선수가 되겠다”고 적었다. 이제 그 순간이 머지않았다. 오랜 기다림과 월드컵의 한을 풀고 당당히 개선할 그날이….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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