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화 “이제 어느 누구와도 경쟁하고 싶지 않다”

  • 뉴시스
  • 입력 2019년 5월 16일 14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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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부상, 최상의 컨디션 유지 못해 실망···은퇴 결심
미래 계획은 아직, 지도자도 하고싶다

빙판을 떠나기로 결심한 이상화(30)가 눈물의 은퇴를 했다. 16일 오후 서울 더플라자호텔에서 은퇴식을 열었다.

자신의 4번째 올림픽인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여자 500m 은메달을 딴 이상화는 2018~2019시즌 대회에 한 차례도 출전하지 않았고, 은퇴를 결심했다.

이날 은퇴식에서는 이상화의 현역 시절 모습이 담긴 영상이 상영된 뒤 대한빙상경기연맹에서 공로패를 전달했다.

이상화는 준비한 인사말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목이 메어 좀처럼 말을 잇지 못했다. 몸 상태가 따라주지 않아 빙판을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의 눈물이었다.

먼저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이상화입니다”라고 소개했다.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라고 소개할 수 있는 것은 마지막이 될 터였다. 목이 메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 이상화는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 잘 정리해서 말해야할지 며칠 동안 고민했다. 너무 떨리고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것 같아 간략하게 준비했다”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열다섯살 때 처음 국가대표 선수가 되던 날이 생생히 기억난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막내로 출전해 정신없이 빙판에서 넘어지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고 했는데 벌써 17년이 지났다. 선수로 뛰기에 많은 나이가 됐다”고 했다. “17년 전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개인적으로 이루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세계선수권대회 우승과 올림픽 금메달, 세계신기록 보유였다”며 “해야한다는,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달려왔다”고 돌아봤다.

이상화는 “목표를 다 이룬 후에도 국가대표로서 국민 여러분께 받은 사랑에 좋은 모습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도전을 이어갔다. 하지만 의지와는 다르게 항상 무릎이 문제였다. 마음과 다르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며 “수술을 통해 해결하려고 했지만, 수술을 하면 선수로 뛸 수 없다고 했다. 힘든 재활과 약물 치료로 싸움을 계속 했지만 제 몸은 원하는대로 따라주지 않았고, 스케이트 경기를 위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지 못해 자신에 대해 실망했다”고 은퇴를 결심한 이유를 설명했다.

최고에 있을 때 내려오고 싶었다는 이상화는 “국민들이 더 좋은 모습으로 기억해 줄 수 있는 위치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싶었다. 항상 ‘빙속 여제’라 불러주시던 최고의 모습만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청했다.

또 “‘살아있는 전설’로 기억되고 싶다. 노력하고,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선수”라고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면서 “욕심이지만 영원히 안 깨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기록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깨지겠지만 1년 정도는 유지됐으면 좋겠다”고 털어놓았다.

아직 미래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은퇴함으로써 스피드스케이팅이 비인기 종목으로 사라지지 않았으면 한다. 후배들을 위해서 지도자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생각을 정리해봐야 할 것 같다”며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 때 해설자나 코치로 가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밝혔다.

-은퇴 결정을 내리기까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언제 최종적으로 결심을 했는지.

“3월 말에 은퇴식이 잡혀 있었다. 막상 은퇴식을 치르려고 하니 온 몸에 와 닿더라. 그래서 너무 아쉽고 미련이 남아서 조금 더 해보자는 마음으로 재활을 병행했다. 나의 몸 상태는 나 만이 안다. 예전 몸 상태로 끌어올리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은퇴를 결정했다.”

-앞으로의 목표나 계획은.

“초등학교 때부터 서른이 될 때까지 목표만 위해서 달렸다. 지금은 다 내려놓고 여유롭게 살면서 어느 누구와도 경쟁하고 싶지 않다. 내려놓고 당분간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싶다.”

-국가대표 생활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소치올림픽 때가 굉장히 기억에 남는다. 세계신기록을 세우고 올림픽 금메달을 못 딴다는 징크스가 있었다. 나도 두려웠다. 하지만 이겨내고 올림픽 2연패를 했다. 깔끔하고 완벽한 레이스여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올림픽에서 딴 3개의 메달이 어떤 의미인가.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3위 내에 들자는 생각만 했는데 깜짝 금메달을 땄다. 소치올림픽에서는 세계기록을 세웠고, 2연패를 했다는 것 자체로 엄청난 칭찬을 하고 싶다. 평창올림픽에서도 2연패라는 경험이 있고, 3연패 타이틀도 따보고 싶었다. 부담 이겨내려고 했는데 쉽지 않았다. 부상이 커지고 있었고, 우리나라여서 더 긴장됐다. 이번 평창 은메달도 색이 참 예쁘더라.”

-고다이라와 연락을 했나.

“깜짝 놀라면서 농담 아니냐고, 잘못된 뉴스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부모는 뭐라고 하던가.

“부모님은 계속 운동하길 원한 것 같다. 은퇴식 날짜 잡히고도 말을 안 했다. 섭섭해 하실까봐 이야기를 못했다. 저만큼 섭섭하실 것 같다. 잘하고 오라고 하셨는데 그 말에 서운함이 묻어있는 것 같다. 겨울이 되도 딸이 경기하는 것을 못 보니까. 그건 차차 달래드리겠다.”

-후배 선수들이 많이 있는데 빙상계에서 활동을 할 계획이 있나. 지도자 계획은.

“평창올림픽 때 꼭 우승을 해야겠다는 생각만 했지, 은퇴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 목표를 세워갈 차례다. 내가 은퇴함으로써 스피드스케이팅이 비인기 종목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후배들을 위해서 지도자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건 생각을 정리해봐야 할 것 같다.”

-은퇴 결정하고 나서 어떤 것을 못하는 것이 가장 아쉬웠나.

“겨울에 성적을 내기 위해 여름에 열심히 훈련한다. 소치올림픽 이후 캐나다에서 훈련했다. 그런 것이 생각난다. 겨울에는 성적을 내면 그만인데 여름에 과정들이 힘들었지만 재미있는 부분도 많았다. 그런 것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모태범, 이승훈과 밴쿠버동계올림픽 삼총사였는데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모)태범이는 다른 종목을 하고 있다. 가끔 연락하는데 같은 이야기를 나눈다. 옛날에 운동하는 것이 즐거웠다는 이야기를 한다. 나는 은퇴하지만 친구들은 현역이다. 다치지 않고 운동했으면 좋겠다.”

-오늘 이후로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라고 하기 힘든데 팬들이 어떻게 기억해주길 바라나.

“평창올림픽 이후 인터뷰에서 어떤 선수로 남고 싶냐고 질문을 받았는데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답했다. 스피드스케이팅 단거리에 이런 선수가 있었고, 세계기록이 깨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노력하고,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선수라고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고다이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고다이라와는 인연이 많다. 중학교 때 한·일 친선 경기를 하면서 친해졌다. 서로 힘들 때 도와주고, 우정이 깊다. 고다이라는 아직 현역이다. 정상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욕심내지 말고 하던대로만 했으면 좋겠다. 나가노에 놀러가겠다고 이야기를 했고, 놀러오라고 하더라. 조만간 찾아갈 계획이다.”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에 출전했다면 어땠을 것 같나.

“만약 베이징동계올림픽을 간다면 그 때도 부담감 속에 떨 것 같다. 항상 제가 1위만 하던 이미지였나보다. 2위를 하면 죄를 짓는 기분이라 평창올림픽 때도 힘들었다. 베이징올림픽 때도 출전하면 힘들 것 같고, 준비 과정이 더 힘들 것 같다. 평창올림픽을 열심히 준비했는데 결과가 이렇게 나왔다.”

-베이징동계올림픽에 갈 것 같나.

“해설자나 코치로 베이징에 가고 싶다.”

-고다이라 외에 기억나는 라이벌이 있나.

“같은 상황이 있었다. 2015~2016시즌에 중국 선수가 강자가 있었다. 한중전이라는 타이틀도 붙었다. 그 선수와 1, 2위를 다퉜다. 그 때 목표를 세운 것이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이었다. 마지막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내가 우승했다. 한중전, 한일전이 기억에 남는다.”

-고마운 사람도 많고, 힘이 된 사람들도 많을텐데. 부모에게도 한 마디 한다면.

“굉장히 많다. 초등학교 때부터 국가대표가 되기까지 도와주신 코치 선생님, 대표팀이 된 후 나를 꾸준히 지켜봐주시고 금메달을 따게 도와주신 분들도 많다. 소치올림픽 때부터 평창올림픽 때까지 같이 해준 케빈 크로켓 코치가 기억에 남는다. 시간이 되면 캐나다로 가서 찾아보고 싶다. 한국에 계신 코치 선생님께 인사를 하며 고마움을 전달할 예정이다.”

-세계기록이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 언제까지 안 깨졌으면 좋겠나.

“욕심이지만 영원히 안 깨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기록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다. 선수들 기량을 보면 많이 올라왔다. 36초대 진입이 쉬워졌다. 언젠가 깨지겠지만 1년 정도는 유지됐으면 좋겠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마인드 컨트롤이 가장 힘들었다. 어떻게 주변에 신경을 쓰지 않겠나. 많이 힘들었고, 부담이 많이 됐다. 꼭 1위를 해야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식단 조절도 해야했고, 남들 하나할 때 두 개를 해야했다. 그런 것들이 나를 이 자리에 있게 만들어줬지만, 모든 것을 자제해야 하는 것이 힘들었다.”

-포스트 이상화로 지목하고 싶은 선수는.

“김민선을 추천하고 싶다. 나이는 어리지만 정신력이 성장한 선수다. 나의 어릴 때 모습과 흡사했다. 평창올림픽 때 방을 같이 쓰면서 떨지 말라고 말해주는 것이 대견스러웠다. 좋은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다. 500m 뿐 아니라 1000m까지 연습해서 500m 최강자로 올라서는 모습을 보고 싶다.”

-절친한 선수들에게 연락을 받은 것이 있나.

“한국에 있는 친구들보다 외국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축하한다고 말도 못하고 망설인 것 같다. 처음으로 받은 것은 고다이라와 스벤 크라머였다.”

-남들의 평범한 일상 중에 가장 부럽거나 해보고 싶었던 것이 있나.

“우리는 하루에 운동을 4번씩 한다. 그게 많이 힘들었다. 그런 패턴을 내려놓고 싶다. 오후 3시가 되면 운동을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는데 이제 내려놓고 싶다.”

-지금까지 은퇴 고비가 있었을 것 같은데.

“평창올림픽 전이 가장 힘들었다. 링크에 나가면 느낌이 있다. 평창올림픽 전에 독일에서 나름 최고 기록을 세우고 평창으로 넘어갔는데 느낌이 조금 다르더라. 한편으로는 메달을 아예 못 따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부정적인 생각으로 스스로를 괴롭혔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제대로 자 본 적이 없다.”

-은퇴한 뒤 다른 종목의 운동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스케이트를 타다 다른 종목의 운동을 하는 선수가 있지만, 나는 최고가 되겠다는 생각 뿐 다른 종목의 운동을 생각한 적이 없다. 무릎 때문에 하기 힘들었고, 무릎 수술을 받을 때가 된 것 같다. 수술을 받고 나면 할 만한 스포츠를 찾게 되지 않겠나.”

-그동안 선수로 있으면서 가장 해보고 싶었던 것은. 오늘 끝나면 무엇을 하고 싶나.

“잠을 편히 자보고 싶다. 평창올림픽 이후 알람을 끄고 생활할 것이라고 했는데, 하루 이틀 밖에 못 갔다. 운동을 하느라. 편히 자고 싶다. 은퇴식 앞두고 착잡하고 힘들었다. 은퇴 발표를 하면서 선수 이상화는 사라졌으니 일반인으로 돌아가서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싶다.”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지금 주변 친구들도 그렇고, 힘들다고 포기하는 친구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쟤도 하는데 왜 나는 못하지’라는 생각으로 임했다. 정말 안되는 것을 되게끔 노력했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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