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의 한 골프장 캐디인 A 씨(54)가 요즘 주말 골퍼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과거에는 그린 위에서 깃대를 꽂은 상태로 퍼팅을 한 뒤 공이 깃대에 맞으면 2벌타를 받았지만 이번 시즌부터 룰이 개정돼 골퍼가 원하면 깃대를 뽑지 않고 퍼팅을 할 수 있다. A 씨는 “많은 주말 골퍼의 고민이 퍼팅 능력 향상이다. 이 때문에 새 방식이 해결책이 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 ‘깃대 퍼팅’(깃대를 꽂은 채로 하는 퍼팅)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다”라고 전했다.
그린 위로 우뚝 솟은 깃대는 쇼트게임의 승리를 부르는 ‘특급 도우미’가 될 수 있을까.
이번 시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2승을 기록 중인 고진영(24)은 깃대 퍼팅 예찬론자다. 지난 시즌 그는 그린 적중 시 평균 퍼트 수가 1.78개로 23위였지만 깃대 퍼팅을 도입한 이번 시즌에는 1.73개로 1위에 올라 있다. 고진영은 “깃대가 시각적으로 타깃의 역할을 한다. (퍼팅) 라인이 잘 보여 공을 정확히 홀로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체대 골프부 박영민 교수는 “홀은 그린 바닥에 있어 명확히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깃대는 그 위로 솟아 있어 남은 거리 측정과 방향 설정에 도움을 준다”고 설명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신인상 포인트 1위를 질주 중인 조아연(19)은 깃대가 내리막 퍼팅 등에서 ‘방어막’ 역할을 한다고 했다. 그는 “내가 공을 조금 세게 쳐도 깃대가 막아줄 것이라는 심리적 안정감이 생긴다. 실제로 경기 중에 다소 센 퍼팅이 깃대를 맞고 홀 안으로 떨어진 적이 있다”고 말했다.
장거리 퍼팅에서 공을 강하게 칠 때는 깃대 퍼팅이 효율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유러피안투어에서 활약 중인 에도아르도 몰리나리(38·이탈리아)는 “강한 퍼팅을 할 때는 깃대를 꽂는 것이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1월 깃대 퍼팅 실험을 했다. 우선 깃대를 꽂았을 때와 뽑았을 때로 나눈 뒤 퍼팅 강도를 강(공이 약간 공중으로 튀어오를 정도), 중(공이 홀 뒷벽을 때릴 정도), 약(공이 홀 중앙에 떨어질 정도)으로 나눠 각각의 조건에서 100번씩 퍼팅을 했다. 실험 결과 홀 중앙으로 강하게 퍼팅을 했을 때 깃대가 있으면 100% 홀인이 됐다. 반면 깃대가 없으면 성공률이 81%로 떨어졌다. 먼 거리에서 강하게 퍼팅을 할 때 깃대의 완충 효과로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깃대 퍼팅은 플레이 시간 단축에도 효과적이다. 한국프로골프(KPGA)투어에서 활약 중인 허인회(32)는 “깃대를 뽑았다가 다시 꽂는 과정에서 시간이 지체되고 경기 리듬도 끊어질 수 있지만 깃대를 꽂고 퍼팅을 하면 플레이 시간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또 깃대를 뽑으러 갈 때 (캐디 등이) 상대 퍼팅 라인을 밟는 문제도 사라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프로 골퍼가 깃대 퍼팅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깃대에 집중하다가 기존의 퍼팅 루틴이 흐트러지거나 공이 깃대에 맞고 나오는 상황에 대한 심리적 우려가 있기 때문. KLPGA투어에서 활약 중인 장하나(27)는 “장거리 퍼팅이 아닌 경우에는 깃대 퍼팅을 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해온 방식이 아니다 보니 시각적으로 불편한 감이 있다”고 말했다.
강하게 치는 장거리 퍼팅과 달리 짧은 퍼팅에서는 깃대 퍼팅이 독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미국 골프다이제스트는 미국 캘리포니아 폴리테크닉주립대 골프팀과 실험을 했다. 약 1.4m 거리에서 깃대를 꽂았을 때와 뽑았을 때 60번씩 퍼팅한 결과 깃대가 있을 때 공이 깃대 중앙을 맞히지 못하면 홀인 성공률이 45%에 불과했다. 반면 깃대를 뽑고 퍼팅했을 때는 성공률이 90%였다. 김재열 SBS 해설위원은 “짧은 거리에서 힘 조절에 실패해 강하게 치는 동시에 깃대 중앙을 맞히지 못하면 공이 깃대 옆을 맞고 튀면서 홀 옆으로 나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골프다이제스트는 기상 상황도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매체는 “바람이 강하게 불면 깃대가 휘면서 공이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을 좁게 만든다. 이 경우에는 안정적으로 깃대를 뽑고 퍼팅을 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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