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했다. 숨 돌릴 틈 없이 빡빡한 스케줄이 계속됐다. 대한민국 축구의 ‘아이콘’ 손흥민(27·토트넘 홋스퍼)의 2018~2019시즌은 유독 길었다.
마지막 한 판이 남았다. 6월 2일(한국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의 완다 메트로폴리타노에서 펼쳐질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이하 UCL) 파이널이다. 손흥민과 토트넘의 상대는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의 라이벌 리버풀. 많은 이들이 큰 무대 경험과 우승 역사를 대며 리버풀의 우세를 점치지만 단판승부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
UCL 파이널은 전 세계 축구선수 모두가 가슴 속에 품고 있는 ‘꿈의 무대’다. 지구촌의 이목이 마드리드에 집중된다. 무려 2억여 명(추정)의 시청자들이 TV 앞에 모인. 단일 스포츠 경기로는 세계 최대치에 근접한다.
손흥민은 프로 첫 타이틀을 꿈꾼다. 2010~2011시즌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SV 1군에 안착, 성인 커리어를 열어젖힌 그는 한 개의 트로피도 수집하지 못했다. 함부르크와 바이엘 레버쿠젠에서 3시즌씩 뛰었음에도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2015~2016시즌부터 함께 한 토트넘에서도 타이틀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토트넘에서 맞은 4번째 시즌, 정규리그와 컵 대회 등 일련의 과정을 생략한 채 곧장 UCL 정상을 바라보는 셈이다. 손흥민도 욕심을 감추지 않는다. UEFA 규정에 따라 결승진출 팀들은 반드시 1회 오픈 트레이닝을 하는데, 그는 27일 행사에서 “소중한 순간이다. 매 경기 인생을 걸고 뛴다. UCL 파이널도 그렇게 준비하고 있다. 결승에 올라 행복한 것이 아니라 이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며 결연한 의지를 불태웠다.
올 시즌은 희비의 롤러코스터로 비유할 만 했다. 팔 부상을 극복한 2017~2018시즌을 성공리에 마친 손흥민은 2018러시아월드컵 여정에 임했다. 2014년 브라질 대회에 이은 2회 연속 밟은 월드컵에서 두 골을 터트렸다. 멕시코와 조별리그 2차전(1-2 패)에 이어 독일과 최종전(2-0)에서 쐐기 골을 뽑았다.
곧장 토트넘의 프리시즌에 임했지만 또 다른 과업이 있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AG)에 와일드카드(24세 이상)로 출격했다. 대한축구협회는 한국 선수가 해외에서 롱런하려면 병역을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구단을 설득해 차출 허가를 받았다.
선전 속 아쉬움이 남은 월드컵과 달리 AG에서는 행운이 가득했다. 김학범 감독의 23세 이하(U-23) 대표팀이 AG 금빛 시상대에 올라 손흥민도 마음의 짐을 털어냈다. 다만 개운함은 오래 가지 못했다. 파울루 벤투 감독(포르투갈)이 부임한 A대표팀은 올해 초 아랍에미리트(UAE)에서 끝난 아시안컵에서 4강 진출에 실패했다. 소속 팀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대표팀 내 활약은 벤투 감독의 고민거리다.
그래도 토트넘에서 손흥민은 다시 힘을 찾았다. 정규리그 12골, 리그 컵 3골, FA컵 1골에 이어 UCL에서 4골을 기록 중이다. 특히 맨체스터 시티(잉글랜드)와 대회 8강에서 세 골을 폭발시킨 장면은 백미 중의 백미.
손흥민은 어린 시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에서 활약하며 UCL 파이널에 3차례나 오른 박지성(은퇴)을 보며 성장했다. 하지만 박지성은 본인이 나선 경기에서 전부 준우승에 그쳤다. 유일하게 뛰지 못한 2008년만 정상에 섰다.
손흥민의 시나리오는 간단하고 또 분명하다. 직접 뛰고, 골도 넣으며 빅이어(UCL 트로피 애칭)를 번쩍 들어올리는 것. 한 골만 넣어도 2016~2017시즌 역대 개인 최다득점(21골)과 타이다. 포체티노 감독은 “어렵지만 일찍 베스트 라인업을 정했다. 가장 퍼포먼스가 출중한 이들이 출격할 것”이라고 했다. 활용 폭이 넓고 결정력을 갖춘 손흥민을 과감히 제외하는 건 포체티노 감독에게 결코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