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 3년차 야구선수. 20년 안팎 이어지는 프로 생활 전체에 비춰봤을 땐 막 첫 발을 뗀 시기다. 자연히 경험보다는 패기가 앞설 때다. 하지만 이정후(21·키움 히어로즈)는 3년째 풀타임 시즌을 소화하고 있다. 신인왕과 태극마크, 골든글러브 등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채워가며 어지간한 서너 살 형들보다 많은 경험을 쌓았다. 젊은 선수들에게 최대의 적이라 할 수 있는 슬럼프에도 의연해졌다.
이정후는 18일까지 71경기에서 타율 0.318, 5홈런, 31타점, 45득점, 9도루를 기록했다. 커리어 처음으로 두 자릿수 홈런을 눈앞에 뒀다. 아울러 도루도 20개 가까이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지난해 타율 0.355로 ‘컨택 장인’의 풍모를 뽐냈다면, 올해는 해결 능력을 갖춘 타자가 됐다. 이정후는 “어린 시절 ‘언젠가 프로가 되면 타율 0.350을 넘기고 싶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걸 이뤘다고 끝낼 수는 없지 않은가. 타율 0.360, 0.370 등 다음 스텝이 필요하다. 매년 달라지고 싶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시작은 좋지 않았다. 지난해 한화 이글스와 준플레이오프 도중 어깨 관절 와순 파열 부상을 입으며 수술대에 올랐다. 당초 6개월 재활이 예상됐지만 본인의 의지와 트레이닝 파트의 든든한 지원이 더해지며 개막 엔트리 합류에 성공했다. 그러나 첫 15경기에서 타율 0.230에 그쳤다. 아버지인 이종범 LG 트윈스 야수총괄은 “올 시즌은 망했다는 생각으로 편히 해라”는 조언을 건넸다.
이정후는 “당시는 마음이 조급했다. (김)하성이 형이 ‘하던 대로 하면 모두가 아는 이정후로 돌아올 것’이라고 조언해준 게 도움이 됐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이어 “야구 인생에서 처음 겪는 슬럼프였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올해 경험 덕에 몇 번이고 슬럼프가 찾아와도 여유 있게,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특유의 타격감을 회복한 이정후는 최근 10연속경기 3번타순으로 배치됐다. 리드오프에 머물던 과거와 다르다. 장정석 키움 감독은 “예상보다 시기가 일찍 찾아왔지만, 언젠가 3번타자 역할을 해줘야 할 선수다. 너무 잘해주고 있다”고 칭찬했다. 이정후 역시 “아무래도 체력적으로 훨씬 편하다. 자연히 집중력도 높아진다”며 웃었다.
장 감독은 올 시즌에 앞서 이정후에게 ‘3년은 꾸준한 성적을 내야 자신만의 애버리지(평균)가 생긴다’고 조언했다. 지금의 성적을 올 시즌 끝까지 유지한다면 ‘이정후만의 야구 펼치고 있다’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는 “3년 동안 꾸준하면 5년, 그 뒤에는 7년, 그 뒤에는 10년을 유지해야 한다. 한 시즌이라도 처지고 싶지 않다”며 “나도, 팀의 또래 선수들도 꾸준함을 유지해 올 시즌 전 3강 평가를 입증하고 싶다”는 다부진 각오를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