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배중 기자의 핫코너] 3루수 최다 홈런 이범호의 은퇴 선언, ‘꽃이 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19일 16시 53분


‘꽃범호’ 이범호(38·KIA)가 최근 은퇴를 선언했다.

KIA는 17일 “이범호가 구단과 면담을 하고 현역 생활을 마무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발표했다. 이범호도 “성장하는 후배들과 팀의 미래를 위해 선수 생활을 마치기로 결심했다. 향후 지도자로 후배들과 즐겁고 멋진 야구를 해보고 싶다”는 소감을 밝혔다.

최근 은퇴를 선언한 KIA 이범호.
최근 은퇴를 선언한 KIA 이범호.

지난해 20홈런을 기록하며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노익장을 과시한 이범호였지만 최근 햄스트링 등 잦은 부상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기 힘들다고 판단하자 미련 없이 유니폼을 벗기로 마음먹었다. 2016시즌 이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KIA와 최대 4년 36억 원에 계약을 맺어 의지만 있다면 내년까지 현역 생활도 가능했다.

‘용단’을 내린 이범호에 KIA도 9년 간 헌신했던 그의 마지막에 ‘꽃길’을 놔주기로 했다. 다음달 13일 한화와의 광주경기에서 이범호의 은퇴식이 열린다. 안방 팬뿐 아니라 2011년 KIA 유니폼을 입기 전 몸담았던(2000~2009년) 친정팀의 선수, 팬들의 박수를 받으며 은퇴할 수 있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 이번 행사는 KIA 출신(데뷔 기준)이 아닌 선수의 첫 은퇴식이다.

뿐만 아니다. 2000년 KBO리그 데뷔 후 19시즌(2010년 일본 제외) 동안 1995경기에 출장한 이범호는 의미 있는 숫자가 될 ‘2000경기’ 출전도 약속 받았다. 박흥식 감독대행은 “곧 선수단에 합류해 다음달 13일까지 1군과 함께하며 자신이 뛰었던 야구장을 모두 돌아보게 될 거다. 적당한 시점에 5경기도 소화할 수 있게 하겠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이범호라 누릴 수 있을 특전들이다.

2000년 한화에서 데뷔한 이범호는 데뷔 초기에 주목받지 못했다. 같은 해 천안북일고 출신1차 지명 신인 조규수가 데뷔시즌 10승을 거두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이듬해 또 다른 천안북일고 출신의 1차 지명 신인 김태균이 데뷔시즌 20홈런으로 신인왕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이범호는 타고난 근성, 노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창출했다. 2002년 한화의 주전 3루수로 자리 잡은 뒤 2004년부터 매년 20홈런 이상을 보장하는 믿을만한 3루수가 된 이범호는 2006,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도 출전했다. 특히 2009 WBC 일본과의 결승전 당시 9회말 2사 1, 2루에서 다르빗슈 유를 상대로 동점 적시타를 때려 큰 경기에 강한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이를 계기로 2010년 일본(소프트뱅크)에도 진출하기도 했다.
과거 한 개그프로에서 이범호를 흉내내는 개그맨 오지헌.
과거 한 개그프로에서 이범호를 흉내내는 개그맨 오지헌.

그의 별명 꽃범호는 “야구는 몰라도 꽃범호는 안다”는 말이 돌았을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KBS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였던 ‘꽃보다 아름다워’(2004년) 출연자 오지헌과 외모가 비슷해 팬들로부터 이 별명을 얻은 이후 그야말로 꽃 같은 활약을 했다. 2009년 WBC 이후 오지헌이 한 개그프로에 나와 “예전엔 이범호가 나를 닮았다고 했는데, 요새는 내가 이범호를 닮았다고 한다”고 인정했을 정도였다.

한화에서 10년, KIA에서 9년을 활약하며 KBO리그에서 이범호가 기록한 성적은 타율 0.271, 1726안타, 329홈런, 1125타점, 954득점. 홈런은 KBO리그 역대 5위 기록이자 3루수 최다 기록이다. 특히 큰 경기와 찬스에 강했던 이범호가 쏘아올린 17개의 만루홈런은 독보적인 1위로 2위(심정수·12개)와 무려 5개나 차이가 난다. 2017년 당시에는 KIA를 우승으로 이끌며 챔피언 반지를 손에 끼기도 했다. 부상 등을 제외하면 선수생활 대부분 한 시즌 100경기 이상 출전해 홈런 20개 이상을 치는 꾸준함을 보여 한화, KIA팬을 막론하고 많은 사랑을 받았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붉은 꽃은 없다’는 뜻으로 권력 혹은 아름다움 같은 좋은 건 오래 못 간다는 걸 꼬집으려 할 때 이 표현을 쓴다. 하지만 항상 겸손히 땀 흘리며 노력해왔던 KBO리그를 대표하는 꽃은 주변의 많은 관심과 사랑 속에 역사상 가장 오래 피다 졌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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