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를 선언한 이범호(38)는 ‘만루홈런의 사나이’다. 개인 통산 17개의 만루홈런을 쳐 이 부문 역대 1위에 올라있다.
깨지기 쉬운 기록은 아니다. 역대 2위는 12개를 친 심정수(은퇴)다. 현역 선수 중에서는 강민호(삼성 라이온즈)와 최정(SK 와이번스)이 11개로 최다다. 7개의 만루홈런을 더 쳐야 이범호를 넘어설 수 있다.
이범호가 포스트시즌에서 친 만루홈런은 1개다. KIA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2017년 10월30일 두산 베어스와의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그랜드슬램을 작렬했다. 이 부문 1위는 2개로, 김동주가 보유하고 있다.
19일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에서 은퇴하는 소회를 밝힌 이범호와의 대화에서 ‘만루’는 단연 화제였다.
이범호는 만루홈런 이야기가 나오자 “언론이나 팬들이 선수들을 만드는 것 같다. 그 전까지 만루홈런을 많이 치지 못했는데 주변에서 자꾸 이야기를 하니 만루가 되면 자신감이 생기더라. 조금 더 부드럽게 방망이를 칠 수 있었다”며 “투수들도 생각을 하게되지 않겠나. 나도 만루 찬스에서 편하게 치자는 생각으로, 공격적으로 쳤다”고 밝혔다.
“가지고 있는 생각이 중요한 것 같다. 주변에서 자꾸 말하니 만루에 나가면 홈런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덧붙였다.
은퇴를 선언하기는 했지만 아직 KBO리그 경기에서 이범호를 볼 수 있다. KIA 구단은 개인 통산 1995경기에 출전해 2000경기 출장을 앞두고 있는 이범호가 대기록을 달성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로 했다.
이범호는 이날 1군 선수단에 합류했고, 앞으로도 동행한다. 조만간 1군 엔트리에 등록돼 다음달 13일 한화 이글스와의 홈경기에서 열리는 은퇴식 전까지 대기록을 위한 여정을 이어간다.
박흥식 KIA 감독대행은 “이범호가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앞두고 가는 곳마다 추억을 되새기라고 빨리 불렀다. 1군 등록은 상황을 봐서 하겠다”고 전했다.
박 감독대행도 ‘만루’를 염두에 두고 있다. “이범호가 중요한 상황에 나갈 수도 있다. 함평서 계속 훈련을 해왔다”며 “만루에 대타로 내보내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이슈가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런 이야기를 전해들은 이범호는 겸연쩍은 웃음을 지었다.
이범호는 “도전해보는 것이 맞는데 팀에 피해가 가는 상황이면 안될 것 같다. 점수 차가 많이 나는데 만루 찬스가 와서 내보내주면 감사하다. 그러나 은퇴해서 배려한다고 하면 미안하다”며 “팀이 1위를 달리고 있으면 여유가 있어서 된다고 하지만, 그런 상황도 아니다”고 걱정했다.
그러면서도 “연습하면서 칠 수 있는 몸을 만들어 놓는 것이 맞다. 감독님이 어떤 상황에서 내보내주실지 모른다. 1군 엔트리에 등록되려면 열흘에서 보름 정도 시간이 있으니 준비를 해보겠다”고 의욕을 내비쳤다.
그라운드와 작별을 예고한 ‘만루홈런의 사나이’가 현역의 마지막으로 가는 길목에서도 만루 찬스에 타석에 들어설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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