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범호’ 이범호(38)가 은퇴한다. 은퇴식을 앞둔 이범호는 “기쁘면서도 쓸쓸하다”며 정든 그라운드를 떠나기 전 소감을 전했다.
이범호는 13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리는 2019 신한은행 마이카 KBO리그 한화 이글스와 경기를 마친 뒤 정든 유니폼을 벗는다. 은퇴경기를 치르고 나서 성대한 은퇴식이 펼쳐질 예정이다.
경기에 앞서 취재진 앞에 앉은 이범호는 “선수로 목표했던 것은 다 이룬 것 같다”며 “이날이 되니 기쁘면서도 후배들과 야구팬들을 떠난다는 생각에 쓸쓸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날 이범호는 3루수로 선발 출전한다. 3루는 이범호가 지금껏 프로 생활을 하며 줄곧 지켰던 포지션. 국가대표 3루수로 뛴 적도 있다. 등번호 25번을 팀의 주전 3루수로 성장한 박찬호에게 물려주기로 한 것도 뜻깊은 결정이다.
이범호는 “(박)찬호한테는 5회까지만 쉬라고 했다. 감독님께 안타 치면 빼달라고 했고, 홈런 치면 한 번 더 나가겠다고 말씀드렸다”며 “상대 외국인 투수(워윅 서폴드)가 나를 잘 모르니 하나 딱 노려서 잘 하고 가겠다”고 멋진 은퇴 경기를 예고했다.
또한 “현재 KIA 타이거즈 주전 3루수는 박찬호라고 생각한다”며 “찬호가 내 등번호를 달고 뛰어준다면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주전 3루수이자 좋아하는 후배에게 물려줄 수 있어 영광”이라고 등번호를 물려주게 된 소감도 밝혔다.
다음은 이범호와 일문일답.
-은퇴식을 앞둔 소감. ▶선수로 목표했던 것은 다 이룬 것 같다. 이날이 되니까 기쁘면서도, 후배들과 야구팬들을 떠나 자립해서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까 쓸쓸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게 현실이니 잘 준비하고 적응해서 프로야구 선수 이범호가 아닌, 새로운 길을 가면서 후배들을 도와줄 수 있는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
-지난 열흘 동안 1군 선수단과 동행했다. ▶경기에 나갈 수 있다는 것이 예전에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하루 이틀 쉬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이제는 ‘그 때 더 뛰었어야 하는데’라는 생각도 든다. 후배들과 함께 뒹굴고 얘기하고, 코칭스태프와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열흘 동안 재밌게 생활했다. 후배들은 잘 반겨주고, 코칭스태프도 잘 안아주시는 마음에 따뜻함을 갖고 떠날 수 있게 됐다.
-오늘로 경기 출전은 더이상 없나. ▶2002를 맞추고 싶었는데 어제는 찬스가 안 났다. 2001로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다. 2000경기는 좀 아쉬워서 2001경기로 오늘로서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지명타자 출전인가. ▶수비 나간다. (박)찬호한테 5회까지만 좀 쉬라고 했다. 감독님께는 안타 치면 빼달라고 했다. 홈런 치면 한 번 더 들어가겠다고 했다. 외국인 투수(워윅 서폴드)가 날 잘 모르니까, 하나 딱 노려가지고 잘 하고 가겠다.
-등번호를 박찬호에게 물려준 배경. ▶현재 KIA 타이거즈 주전 3루수는 박찬호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간다면 3루수에게 주는게 맞다고 생각했다. 찬호가 내 등번호를 달고 뛰어준다면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주전 3루수이자 좋아하는 후배에게 물려줄 수 있어 영광이다.
-한국에서는 없었던 일이다. 본인이 요청했나. ▶구단이랑도 상의를 했고, 찬호랑도 얘기를 했다. 그렇게 서로서로 잘 맞췄다. 찬호도 흔쾌히 ‘좋은 번호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구단에서도 나를 보내면서 아쉬운 마음에 좋은 선수에게 주고 가는 결정을 내린 것 같다. 모두가 만족하는 결정이다.
-당장 내일은 뭘 하나. ▶서울에 올라가야 할 것 같다. 월요일에 방송이 있다. 일주일 동안 바쁠 것 같아 그 뒤부터 쉬어야 할 것 같다.
-가족들과 해보고 싶었던 것. ▶여름에 여행을 가보고 싶었다. 프로야구 선수 누구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여름에는 절대 여행을 가지 못하기 때문에 가보고 싶다. 9월에는 (연수 때문에) 일본으로 넘어가야 할 것 같아서 7,8월에 가보도록 하겠다.
-시포를 맡았다. ▶아들이 야구를 정말 좋아한다. 오늘도 야구교실에 가서 야구를 하고 온다는 것을 말리고 나왔다. 누가 시구를 할지 싸우기도 했는데 아들이 시구, 딸이 시타를 하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던져보는 것이 나중에 운동을 할 경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우천취소 걱정은 안했나. ▶아침에 비구름을 자주 보는데 신기하게 비구름이 광주 밑으로 지나가더라. 하늘이 돕는구나, 다행이구나 라는 생각으로 출근했다.
-만원관중이 예상된다. ▶KIA에서 모든 것을 이뤘지만 KIA에서 길게 선수생활을 하지는 못해서 팬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분한 사랑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은퇴식 앞두고 가장 걱정했던 것은 ‘경기장이 가득 찰까’였는데, 오늘 많은 분들이 찾아준다고 하니 감사하다.
-어제 잠은 잘 잤나. ▶생각보다 푹 잘 잤다. 어제 아침 일찍부터 홍보팀에서 스케줄을 꽉 채워주셔서 집에 돌아가니 피곤해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잤다.
-상대가 한화라 더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것 때문에 은퇴식이 빨라졌다. 한화가 아니라면 팀에 미안한 마음에 일찍 은퇴할 수 없었을 것이다. 7월에 은퇴하는 선수가 거의 없지 않나. 시즌 중이라 죄송하다. 한화랑 주말 스케줄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날로 정했다.
-일본에서 1년 동안 어땠나. ▶프로야구 선수로서 일본 가기 전후로 달라진 것 같다. 보고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 선수들이 갖고 있는 열정만큼은 배우고 싶었다. 여기와서 그 열정으로 선수 생활을 했다. 한 번 더 일본으로 건너가 그라운드 밖에서 보는 일본야구를 경험하고 싶었다. 일본으로 연수를 가게 된 계기다.
-비슷한 또래의 선수들에게 연락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박기혁 코치님, FA 앞두고 있는 (유)한준이에게 전화를 받았다. (박)용택이형, (이)택근이형 등 나와 함께 했던 형들한테는 다 연락을 받았다.
-김주찬이 팀에 최고참으로 남게 됐다. ▶가장 쓸쓸하지 않을까. 원래 (김)주찬이가 잘 어울리는 성격이 아니다. 외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는데, 코칭스태프에서 잘 챙겨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실감이 안 날 것 같다. ▶실감 안난다. 은퇴식에서 불이 꺼지면 덜덜 떨 것 같다. 불 꺼지고 팬들에게 마지막 떠나는 얘길 할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가 가장 복잡하게 남아 있던 고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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