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국민타자’ 이승엽(당시 삼성 라이온즈)은 시즌 최종전인 10월 2일 대구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2회 홈런을 때려내며 56호 고지에 올랐다. 오 사다하루 등이 보유하던 단일시즌 아시아 홈런 신기록(55호)을 넘어서는 순간이었다.
그해 삼성 타선에 이승엽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마해영(38홈런), 양준혁(33홈런), 진갑용(21홈런), 틸슨 브리또(20홈런), 김한수(17홈런), 박한이(12홈런) 등 무려 일곱 명의 타자가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다. 당시 삼성은 팀 홈런 213개로 KBO리그 신기록을 썼다. 2017년의 SK 와이번스가 234홈런으로 기록을 깨기까지 무려 14년이 필요했다.
삼성의 팀 홈런 1위는 이승엽이 대기록을 세웠던 2003년이 마지막이다. 그 후에도 야마이코 나바로, 최형우, 심정수 등 거포들을 앞세워 팀 홈런 상위권에 랭크된 적은 있지만, 압도적인 홈런군단의 컬러를 구축한 적은 없다.
2016년 대구 시민구장에서 삼성라이온즈파크로 홈구장을 옮겼지만 타자 친화적인 특색은 여전했다. 그러나 홈런을 때려내지 못하는 선수들이 라인업에 즐비했던 삼성은 오히려 손해를 봤다. 실제로 삼성은 라이온즈파크 개장 이후 지난해까지 팀 홈런 5~7~9위로 맥을 못 췄다. 반대로 2016~2017시즌 2년간 연이어 팀 피홈런 최다 1위에 올랐고, 지난해에도 4위였다.
올해는 비로소 홈구장의 특색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공인구 반발계수 조정 등으로 리그 전체가 홈런 감소에 시달리고 있지만 삼성은 이를 역행 중이다. 6일까지 102경기에서 95홈런을 때려냈다. 경기당 1개에 못 미치지만 무시무시한 홈런 군단 SK(105경기 90홈런)를 제치고 이 부문 1위다. 이대로 시즌을 마칠 경우 2003년 이후 16년 만에 팀 최다 홈런이란 의미 있는 타이틀을 차지한다.
다린 러프(17홈런), 이원석(16홈런), 강민호(12홈런), 구자욱(11홈런) 등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이가 많지는 않다. 하지만 김동엽, 이학주(이상 6홈런), 김상수, 박해민(이상 5홈런) 등 타순이 전반적으로 ‘한 방’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다. 선수 시절 홈런군단의 일원이었던 김한수 삼성 감독도 “확실히 리그 전반적으로 홈런이 줄어들었지만 우리 선수들이 잘 대처해주고 있다”고 칭찬했다.
프로스포츠에서 색깔이 없는 팀은 성적이 나쁜 팀만큼이나 치명적이다. ‘왕조’에 마침표가 찍힌 뒤 삼성이 그랬다. 그런 점에서 올 시즌 홈런군단 1위의 위용을 되찾았다는 것은 삼성의 변화를 보여주는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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