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천후로 경기가 기약 없이 연기되던 11일 KLPGA 투어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 최종라운드. 이날 이른 오전부터 야속하게 쏟아지던 빗줄기를 복잡한 마음으로 쳐다보던 이가 있었다. 바로 고진영(24·하이트진로)이었다.
고진영은 이번 대회에서 가장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주인공이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 2관왕 그리고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안고 돌아온 고진영을 향한 국내 골프계의 관심은 상당했다. 필드 안팎에선 다수의 취재진이 따라붙었고, 유망주 원포인트 레슨과 팬 사인회 등 각종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많은 관중이 몰려들었다.
개막 기자회견에서 “톱10 진입이 목표”라고 밝혔던 고진영은 그러나 자신의 1차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아쉬운 표정이었다. 2라운드까지 3언더파 141타 공동 13위로 순항했지만, 11일 마지막 날 경기가 태풍의 영향으로 취소되면서 이 성적 그대로 이번 대회를 마쳐야 했다.
최종라운드 취소가 결정된 뒤 만난 고진영은 “너무 아쉽다. 톱10 진입을 해야 했는데 이를 이루지 못하게 됐다. 또 나를 보러온 팬분들께도 좋은 경기를 보여드릴 수 없게 돼 오히려 죄송스러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2주 연속 메이저대회를 치른 뒤 국내로 향하는 쉽지 않은 강행군이었다. 지난달 말 프랑스에서 열린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역전 우승을 거둔 고진영은 영국으로 건너가 브리티시 여자오픈을 소화한 뒤 곧바로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를 뛰었다.
시차 적응조차 할 시간이 없는 빡빡한 일정을 보낸 고진영은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너무나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많은 분들께서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 탈환을 축하해주셨다. 또 1, 2라운드에서는 경기 내내 최종라운드 챔피언조 못지않은 응원을 받았다”고 활짝 웃고는 “부모님이 계신 제주도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아귀찜과 떡볶이, 프라이드치킨 등 평소 먹고 싶던 음식도 마음껏 먹었다”고 밝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2014년 데뷔한 고진영은 같은 해 신설된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와 각별한 인연을 지닌다. 올해까지 6년 연속 개근을 했고, 2017년 대회에선 정상을 밟기도 했다. 2014년 KLPGA 투어 신인부터 지난해 LPGA 투어 루키 그리고 올해 세계 1인자 등 다양한 자격으로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를 경험한 고진영은 “올해는 확실히 예년과는 느낌이 달랐다. 많은 분들께서 응원을 보내주신 덕분인지 뿌듯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책임감도 더 생겼다”고 진심을 말했다.
제주도에서 머무는 며칠간 “태어나서 가장 많은 사인을 했다”는 고진영은 당분간 국내에서 휴식을 취한 뒤 22일 개막하는 캐나다 여자오픈에서 LPGA 투어 레이스를 재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