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영(24·하이트진로)이 이번 시즌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성적을 올린 배경에는 철저한 시즌 준비와 LPGA 투어 2번째 시즌을 맞아 여러 가지로 편안해진 현지생활 적응도 있겠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캐디 데이빗 브루커의 역할이다. 두 사람은 이번 시즌부터 호흡을 맞추고 있다. 2017년 KLPGA 투어에서 활동하다 KEB 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덜컥 LPGA 투어 시드권을 따냈을 때만 해도 고진영은 딘 허든과 오래 호흡을 맞춰왔다. 2018년 LPGA 투어 데뷔전인 ISPS 한다 호주 여자오픈에서 67년 만의 데뷔전 우승기록도 함께 세웠다. 하지만 그가 건강문제로 더 이상 무거운 캐디백을 메기 힘들다고 하자 아름다운 이별을 했다.
이후 고진영은 제프 브라이튼과 함께 시즌을 잠시 보냈고 올해 잉글랜드 국적의 브루커와 계약을 맺었다. 사실 선수와 캐디의 계약은 간단하다. 선수가 원하면 하는 것이고 싫으면 그 자리에서 해고다. 싫건 좋건 매일 함께 얼굴을 맞대고 지내야 하기에 가족보다도 더 가까운 게 선수와 캐디 관계다.
캐디 경력만 24년째인 브루커는 2004년 박지은, 2008년 로레나 오초아와 함께 ANA인스퍼레이션에서 우승할 때 함께 연못에 뛰어들었던 베테랑이다. 오초아와는 2006년부터 3년간 함께 활동하면서 21승을 합작했다. 그야말로 ‘우승 청부사’다. 이런 능력을 아는 박지은이 고진영에게 새 캐디로 브루커를 추천했다. 결국 고진영은 이번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우승을 했다. “코스를 잘 알고 있는 캐디가 많은 도움을 준다”면서 무한신뢰를 보냈던 두 사람이 만들어낸 멋진 케미의 결과였다.
그에게 시즌 3승째이자 2번째 메이저대회 우승을 안겨준 에비앙챔피언십에서도 브루커의 역할은 빛났다. 최종라운드 4개의 홀을 남겨뒀을 때 브루커는 리더보드를 보지 말라고 했다. 긴장을 풀기 위해 검도 씹으라고 조언했다. 결국 고진영은 4타 차이의 열세를 딛고 우승했다. 이번 CP 여자오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대회를 앞두고 각자 다른 곳에서 휴식을 취한 뒤 캐나다에 모였다. 브루커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코스를 미리 살펴볼 기회가 적었지만 고진영은 캐디의 눈과 경험을 믿었다. 처음 보는 코스에서 오직 캐디의 조언대로 경기를 해가면서도 두 사람은 환상적인 결과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이 만든 승수가 벌써 4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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