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위와 3위의 만남. 그것도 오랜 라이벌들의 대결이라면 골키퍼가 주목을 받는 경우는 흔치 않다. 대개는 승패에 영향을 끼친 필드 플레이어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쏠린다.
그런데 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 전북 현대의 ‘하나원큐 K리그1 2019’ 28라운드는 달랐다. 경기 MOM(맨오브더매치)는 결승골을 터트려 전북의 2-0 쾌승을 일군 외국인 공격수 호사의 몫이었으나 취재진은 수문장 송범근을 수훈갑으로 꼽았다. 경기 후 두 팀 사령탑과 함께 공식기자회견에 나선 이도 그였다.
그럴 만 했다. 2-0으로 앞선 후반 34분 서울 페시치가 얻어낸 정원진의 페널티킥(PK)을 오른팔을 쭉 뻗어 막았다. 송범근은 손을 맞은 볼이 골대를 튕겨 나오면서 이뤄진 리바운드 슛까지 재빨리 잡았다. 프로 입단 후 처음 경험한 PK 선방.
솔직히 최고의 시나리오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중앙수비수 최보경의 파울로 내준 PK 상황에 맞서려 골라인으로 향하던 그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막을 수 있을까? 또 먼저 움직여야 하나? 그냥 기다려야 할까?’
2020도쿄올림픽에 도전할 김학범 감독이 제주도에 마련한 22세 이하(U-22) 대표팀 훈련캠프에 합류하기 위해 2일 공항으로 향하던 중 연락이 닿은 송범근은 “반복된 레퍼토리가 또 시작됐다 싶었다”고 당시의 감정을 털어놓았다.
2017·2018시즌 2연패를 비롯해 통산 6회 정상을 밟았던 전북은 올 시즌 유난히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전히 막강한 전력을 갖췄음에도 적극적인 전력 보강에 임한 ‘현대가 형제’ 울산 현대의 강한 도전을 받고 있다.
이길 경기를 비기고, 비길 경기를 지면서 단독 선두를 질주하고, 2위권과 격차를 벌릴 기회를 놓칠 때가 많았다. 두 골차 리드를 잃고 심지어 세 골차 우위를 동점으로 내주는 경우도 생겼다. 송범근은 “이렇게 한 골 내주면 또 비길 수 있겠다는 안 좋은 생각도 했다. (PK 선방 후) 정말 눈물이 났다”고 했다.
아픔은 또 있다. 송범근은 수많은 PK 상황을 경험했으나 무조건 실점했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와 FA컵 등 토너먼트 무대에서도 결과는 백전백패. 해볼 건 정말 다해봤다. 방향을 정해준 선배의 말을 따라보기도 했고, 방향을 미리 예측해 움직여보기도 했는데 통하지 않았다. 스승 조세 모라이스 감독(포르투갈)의 “언제쯤 하나 막아줄 거냐”는 가벼운 농담이 비수처럼 꽂힐 정도로 부담이 컸다.
다행히 솟아날 구멍이 있었다. 훈련 때마다 로페즈, 호사, 이동국에게 킥을 요청하고 김진수와 손준호, 이승기 등과 내기를 하며 감을 익혔다. 특히 모든 훈련 프로그램이 끝난 뒤 연습한 것도 도움이 됐다. “훈련에서 답을 얻었다. 리듬을 찾았다. 내가 신장이 있어 먼저 뜨지 않아도 된다고 봤다. GK가 먼저 움직이면 키커가 유리해진다. 형들도 ‘끝까지 보고 움직이라’고 조언해줬다. 호흡이 가쁠 때 PK는 승부차기를 가정했다”고 털어놓았다.
프로 커리어 첫 PK 선방과 함께 이뤄진 시즌 10번째 클린시트(무실점 경기), 그렇게 한 뼘 더 자란 송범근은 이제 무서울 것이 없다. “한 번의 계기가 중요했다. 경기 직후 부모님과 늦은 저녁식사를 하는데 마음의 짐이 조금은 덜어졌다. PK가 달가울 리 없어도 자신감이 생겼다”며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