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무성의한 북한축구 어찌 하오리까

  • 스포츠동아
  • 입력 2019년 9월 24일 16시 52분


대한축구협회 정몽규 회장. 스포츠동아DB
대한축구협회 정몽규 회장. 스포츠동아DB
예상은 했다. 그들의 과거 습성이 그랬다. 언제나 막판까지 애를 먹였다. 무관심으로 일관하다가도 논의과정에서 딴소리를 하곤 했다. 이번에도 어느 정도 짐작은 했다. 하지만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 이렇게 답답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 상대방 사정은 아랑곳없이 아예 묵묵부답이다.

2022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에서 맞붙을 남북한 축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지난 7월 열린 조 추첨에서 우리와 북한이 H조에 함께 편성됐을 때만해도 서울과 평양을 오가는 경기로 큰 화제를 모았다. 사상 처음으로 평양에서 월드컵 남북 축구를 기대했지만 현실로 드러나는 그 과정은 실로 가시밭길에 가깝다.

우리와 북한의 H조 3차전은 10월 15일 오후 5시 30분 예정되어 있다. 홈팀 북한은 그 경기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기로 아시아축구연맹(AFC)에 통보했다. 우리는 1승, 북한은 2연승을 기록하고 있어 특수 상황의 남북한 대결을 떠나서도 조 선두를 놓고 벌이는 흥미진진한 한판 승부가 예상된다.

하지만 경기 날까지 20여일 남은 현재까지 북한은 비협조로 일관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평양 원정 준비를 위해 AFC를 통해 두 차례 북한 측에 협조를 요청했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답을 받지 못했다.

월드컵이란 게 그냥 선수들이 경기장 가서 유니폼 입고 뛰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다. 준비할 게 상당히 많다. 특히 원정팀은 이동 경로나 숙소, 음식, 훈련장 등 챙길 게 산더미다. 필요하면 비자도 발급 받아야 한다. 북한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이런데도 북한은 우리의 사정을 모른 체 하면서 도움을 주지 않고 있다. 이는 축구를 떠나 기본 예의의 문제다.

물론 이번 평양 원정은 축구협회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대외적으로는 AFC는 물론이고 국제축구연맹(FIFA)과도 공조를 해야 하고, 국내에서는 통일부와 외교부, 문체부의 협조가 필요하다.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 벤투 감독.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 벤투 감독.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축구협회는 특히 이동 경로에 대한 고민이 깊다. 장소가 평양으로 변함이 없을 경우 육로나 직항 노선으로 건너갈지 아니면 중국을 경유할지 결정되어야 한다. 만약 장소가 제3국으로 변경될 경우에도 대비해야 한다. 이럴 경우 중국이 유력한데, 이에 따른 비자 문제 해결이 우선이다. 이처럼 다양한 시나리오를 짜 놓아야 할 판이다.

축구협회는 10월 월드컵 예선 2경기에 나설 선수단 명단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최근 중국축구협회로부터 대표급 선수 30여명에 대한 초청장을 받았다. 이는 중국 방문 비자를 발급받기 위한 절차 중 하나다. 특히 10월 초부터 시작되는 중국의 국경절 연휴 때문에 축구협회는 분초를 다투는 급박한 마음으로 평양 원정을 준비 중이다.

우리는 북한의 무성의한 태도를 이미 경험한 적이 있다.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이 열린 2008년,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남북은 조별 예선에서 한 조에 속해 상대방을 오가며 경기를 할 예정이었지만 끝내 평양 경기는 열리지 않았다. 3차 예선 뿐만 아니라 최종예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북한은 남북 관계가 경색됐다는 이유로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 연주, 대규모 응원단에 대해 난색을 표하며 홈경기 개최를 거부했다. 경기 날짜가 3월 26일이었지만 3월 초까지도 합의를 보지 못했다. 결국 3월 7일 FIFA가 제3국 개최라는 중재안을 내 타결됐다. 또 경기 개최 12일 전에야 겨우 장소(상하이 훙커우 구장)가 확정될 정도로 그야말로 진땀을 뺐다. 물론 우리의 홈경기는 별 문제없이 서울에서 열렸다.

11년 전보다 이번이 더 심한 듯하다. 기본적으로 소통을 해야 대비를 하고 해결책이 나오는데, 이번에는 아예 반응이 없다. 경기를 하자는 것인지 말자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북한의 속셈을 알 수 없다. 태극기와 애국가, 그리고 응원단을 완전히 배제할 꿍꿍이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북한의 무성의 탓에 축구협회의 속앓이는 깊어만 간다.

최현길 전문기자·체육학 박사 choihg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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