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우의 오버타임] ‘롯데 개혁’에 필요한 새로운 지평과 인식

  • 스포츠동아
  • 입력 2019년 9월 30일 05시 30분


롯데 성민규 단장. 스포츠동아DB
롯데 성민규 단장. 스포츠동아DB
메이저리그 탬파베이 레이스는 올해 연봉 총액이 6500만 달러(약 780억 원)에도 못 미치는 스몰마켓 구단의 대명사다. 집계처마다 조금씩 수치가 다를 뿐 30개 구단 중 연봉 총액이 가장 낮은 구단임은 분명하다. 2억4000만 달러(약 2880억 원)로 1위인 보스턴 레드삭스에 비하면 대략 4분의 1 수준이다.

그러나 탬파베이는 올해 와일드카드 결정전 진출로 6년 만에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는다. 지난해 월드시리즈 챔피언인 보스턴을 제치고 뉴욕 양키스에 이어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2위를 차지했다. 지난해에도 90승72패로 지구 3위에 올랐고, 와일드카드 레이스에선 3위였다.

탬파베이는 포스트시즌 문턱에서 좌절한 지난해 ‘오프너’ 또는 ‘불펜데이’라는 생소한 개념으로 메이저리그에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최소 5이닝은 책임지는 선발투수가 아니라 1·2이닝을 소화하는 불펜투수를 첫 번째 투수로 내세우는 것이 핵심이다. 그 뒤로 진짜 선발투수를 등판시키거나 다른 불펜투수들을 잇달아 투입해 경기를 끝내는 방식이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선발투수의 몸값을 감당하지 못하는 스몰마켓 구단의 고심이 묻어난다.

새로운 시도에는 늘 적잖은 진통이 수반되듯, 야구의 고전적 개념을 훼손하는 탬파베이의 행위는 적잖은 저항에 직면했다. 당장 몸값 하락을 우려하는 일부 거물투수들, 경기시간 단축에 사활을 건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들에게 탬파베이는 야구의 전통을 파괴하는 이단아처럼 보였다.

그러나 오프너는 1년 만에 고육지책이 아닌 전략으로 당당히 자리 잡았다. 빅마켓 구단들마저 필요에 따라 활용하고 있다. 당장 LA 다저스만 해도 포스트시즌 최적의 마운드 조합을 고심하며 9월 한 달간 꾸준히 오프너 전략을 실험했다. 강자의 논리 또는 생존방식을 뒤쫓기 힘든(그래봐야 한계가 있는) 약자의 고민이 담긴 발상이 어느덧 메이저리그 전체의 환영을 받기에 이르렀다.

요즘 KBO리그에선 롯데 자이언츠의 변신 시도가 화제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 출신의 30대 단장을 선임하고, 외국인 후보자로 국한하긴 했지만 이례적으로 감독 선임 절차를 공개하는가 하면 새로운 직책(또는 직군)을 신설해 인적개편에도 벌써 착수한 분위기다. 김종인 대표이사, 성민규 신임 단장이 주도하는 롯데 개혁의 프로젝트가 시즌을 마치면 과연 어느 선까지 확대될지 궁금증을 더하고 있다.

KBO리그 원년 구단의 이 같은 파격 행보는 기대감과 더불어 냉소적 반응을 함께 낳고 있다. 지난 2년간 해마다 감독을 경질할 정도로 단기처방에 급급하거나 조급증으로 일관한 터라 신뢰감이 떨어지는 것 또한 현실이다. 또 급격하고 과격한 방식의 변화가 향후 내부 구성원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올 염려도 있다.

그러나 원년 구단임을 자랑스러워해야 할 롯데가 지금껏 보여준 비전 없는 구단 운영과 축적되지 않은 전력을 떠올리면 지금의 변신 노력을 성급히 폄훼하거나 비난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롯데는 강자가 아닌 약자라는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있다면, 전방위적인 쇄신을 택한 그 용기에 오히려 박수를 보내줄 만하다. 어쩌면 지금 롯데가 겪고 있는 고통은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티끌만큼도 달라지지 않았던 과거의 자화상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정재우 기자 ja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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