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휠체어로는 낼 수 없는 속도감이 좋았어요. 트랙도 달리고, 도로도 질주하고…. 운동을 시작하면서 학교생활도 즐거워졌어요.”
휠체어육상 유망주 이종구(16·서울)가 생애 처음 출전한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잇달아 메달을 목에 걸고 있다. 종구는 15일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남자 800m(T53·T54등급) 금메달에 이어 17일 1500m, 18일 1600m 계주에서 동메달을 땄다. 800m에서는 앞서 달리던 2명이 충돌하는 바람에 운 좋게 1위가 됐지만 출전 선수들 가운데 막내인 고교 1학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성과다.
척수수막류라는 병으로 태어날 때부터 다리를 쓰지 못했던 이종구는 지난해 2월 휠체어농구로 운동을 시작했다. 장애인 이용시설인 정립회관을 알게 된 게 계기가 됐다. 운동 신경이 뛰어난 이종구를 지켜보던 지도자들이 육상을 권했고 대한장애인체육회 꿈나무 아카데미를 통해 본격적으로 휠체어육상에 입문했다.
“운동을 하기 전에는 주로 집에만 있었어요. 친구들과 얘기하는 것도 싫었고, 노는 것도 싫었어요. 이제는 아니에요. ‘운동’이라는 주제로 친구들과 대화하는 게 좋아요. 성격까지 바뀐 것 같아요.”
이종구의 롤 모델은 김규대(35)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 자문위원이다. 2004년 1월 해군특수전여단 수중파괴대(UDT)에 입대했던 김규대는 그해 12월 낙하산 훈련 도중 척수를 다친 뒤 휠체어육상을 시작했다. 2013년 IPC 리옹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800m에서 정상에 올랐고, 2008년 베이징 대회를 시작으로 패럴림픽에서 3회 연속 메달을 얻은 한국 휠체어육상의 간판이었다. 현재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김규대는 7월과 8월에 국내에서 ‘휠체어 트랙 캠프’를 열었다. 7월 서울 송파구 대한장애인체육회 체육인지원센터에서 개최한 1차 캠프 때는 장비 교육, 운동 역학, 스포츠 영양학 등 이론을 강의했고, 8월에는 이천훈련원에서 실전 훈련을 진행했다. 캠프 비용 마련을 위해 스폰서도 스스로 구했고, 코치로도 직접 나섰다. 자신의 은퇴 이후 사실상 명맥이 끊긴 휠체어육상 신인들을 발굴하기 위해서였다.
“열정적으로 지도하는 김규대 아저씨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 제가 타는 레이싱용 휠체어도 김규대 아저씨가 선수 시절에 사용하던 거예요.”
장애인체육 관계자들은 이종구가 김규대의 뒤를 이어 한국 휠체어육상을 대표하는 선수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규대보다 훨씬 일찍 휠체어육상을 시작한 것도 큰 장점이다.
“당장의 목표는 국가대표가 되는 거죠. 한국기록도 세우고 싶고요. 그렇게 열심히 하다보면 장애인아시아경기, 패럴림픽에서도 메달을 딸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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