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를 선언한 선수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배영수(38·두산)의 목소리는 해맑았다. 두산의 한국시리즈(KS) 우승이 확정된 이틀 뒤인 28일 그는 김태형 두산 감독을 찾아가 “은퇴하겠다”라고 알리며 2000년 데뷔 후 20시즌의 현역생활을 마감했다.
그의 표현대로 선수생활 마지막 순간은 행복했다. 26일 키움과의 KS 4차전, 두산이 11-9로 앞선 9회말 1사에서 마운드에 등판한 그는 박병호를 삼진, 샌즈를 투수땅볼로 처리하고 두산의 6번째 KS 우승을 매듭지었다. 경기 후 김 감독은 배영수에게 현역은퇴를 제안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는데, 박수칠 때 떠날 수 있는 적기가 됐다. 배영수도 “정규시즌 막판에 진지하게 고민하던 찰나에 감독님이 도움을 주셨다. 소름이 돋을 만큼 딱딱 맞아떨어졌고, 몸도 가벼워서 가장 기쁜 마지막을 보낼 수 있었다. 모두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현역 최다승 투수(138승)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던 배영수는 정규시즌뿐 아니라 가을무대에서도 강한 우승청부사였다. 2001년부터 무려 11시즌 동안 가을 가장 마지막 시리즈를 치르며 우승반지만 8개를 꼈다. 2006년 삼성 우승은 배영수의 ‘팔꿈치’와 맞바꿨다고 해도 될 정도로 그의 투혼은 빛났다. 5경기에 등판한 그는 2승 1세이브 1홀드 평균자책점 0.86을 기록하며 팀을 우승으로 견인해 ‘푸른 피의 에이스’라는 영광스러운 명성도 얻었다.
그의 선수생활이 늘 빛났던 건 아니다. 2006년 KS 우승 후 이듬해 1월 팔꿈치 수술을 한 배영수는 150km 이상의 공을 밥 먹듯 던졌던 투수에서 구속이 10km이상 뚝 떨어지며 기교파 투수로 변해야 했던 시간이 필요했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2009시즌 ‘1승 12패 평균자책점 7.26’의 처참한 성적을 내기도 한 그는 2013년 14승으로 다승왕에 오르며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2015년에는 자유계약선수(FA)로 한화로 옮겼다. 2018시즌 뒤 한화에서 방출된 뒤 두산으로 옮기며 영원히 푸를 줄 알았던 그의 피도 조금은 변했다.
향후 계획에 대해 그는 “(은퇴선언 후)긴장이 풀리고 나니 피곤해서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만 ‘은퇴 후 코치’ 제안을 받았던 두산에서 어떤 보직으로든 선수들을 돕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플레잉 코치 제안도 받았는데 과감히 접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감독님께 제대로 배워야죠. 하하.”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