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TNT타임] ‘탱크’ 최경주의 잔은 여전히 비워져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3일 07시 24분


-10월 3주 연속 국내대회 출전, 원숙한 기량 발휘
-4일 인천 송도에서 재단 행사 개최, 자선 활동도 활발
-만 50세되는 내년에는 챔피언스투어 활약 기대

내년 50세를 바라보며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최경주. 동아일보 DB
내년 50세를 바라보며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최경주. 동아일보 DB

며칠 전 한 행사에서 만난 ‘탱크’ 최경주(49)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체중을 10kg 가까이 뺐지만 이젠 근육이 붙어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며 웃는 그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최경주는 지난달 국내에서 3주 연속 대회에 나섰다. 자신이 주최한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코리안투어 현대해상 인비테이셔널에서 3위를 차지했고, 제네시스챔피언십(공동 44위)에 이어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더CJ컵(공동 16위)에 연이어 출전했다. 최경주의 큰 아들 호준 군은 1997년생으로 22세. 아들 뻘되는 선수들과 맞붙어야 했고, 자신을 사랑하는 국내 팬 앞에서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도 컸지만 그는 때론 우승 경쟁에 나서며 여전히 녹슬지 않은 기량을 펼쳐 구름 갤러리를 몰고 다녔다.

최경주를 전면에 내세운 PGA투어 더CJ컵 포스터. 스포티즌 제공
최경주를 전면에 내세운 PGA투어 더CJ컵 포스터. 스포티즌 제공


최경주는 “체형 변화 후 아직 스윙이 완성된 건 아니다. 내년엔 좀더 나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또 “까마득한 후배들과 같이 치다보면 세월의 무상함을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아직도 내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흐뭇하기도 하다”며 미소를 지었다. 최경주는 20대 초반의 후배들에게도 깍듯이 존댓말을 사용하려 한다고 했다. 나이차를 떠나 한 명의 프로로서 예우하는 건 중요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내년 5월이면 최경주는 만 50세가 된다. 현재 PGA투어에서 뛰고 있는 그는 50세 이상이 참가하는 챔피언스 투어에 나설 자격을 얻는다. 그는 특유의 입담으로 새로운 무대를 향한 포부도 밝혔다. “최대한 PGA투어를 잘 마무리하고 싶다. 타이거 우즈를 비롯한 40대들도 여전히 잘 치고 있지 않는가. 챔피언스 투어에 가면 나도 막내급이다. 아직 쌩쌩한 만큼 우승할 기회도 많아질 것으로 본다.”

2016년 리우올림픽 한국 남자골프 대표팀 감독으로 출전한 최경주. 동아일보 DB
2016년 리우올림픽 한국 남자골프 대표팀 감독으로 출전한 최경주. 동아일보 DB


내년 7월에는 한국 골프 남자대표팀 감독으로 도쿄올림픽에 출전한다. 여자 대표팀 박세리 감독과 함께 2016년 리우올림픽에 이어 2회 연속 올림픽 사령탑의 중책을 맡았다. 리우에서 여자 대표팀은 박인비가 금메달을 땄다. 당시 남자 대표팀은 노메달이었다. 도쿄에서는 입상을 노리겠다는 게 지휘봉을 잡은 최경주의 원대한 목표다.

최경주 재단 후원의 밤 행사에서 턱시도 차림에 노래를 부르고 있는 최경주. 동아일보 DB
최경주 재단 후원의 밤 행사에서 턱시도 차림에 노래를 부르고 있는 최경주. 동아일보 DB


국내에 머무는 동안 그는 2007년 11월 자신이 설립한 최경주 재단 활동에 매달리고 있다. 후원 기업과 관련된 행사에 자주 참석하는가하면 해마다 열고 있는 ‘자선 골프대회와 후원의 밤’ 준비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올해 행사는 4일 인천 송도 잭니클라우스 골프클럽에서 열릴 예정이다. 지난 시즌 PGA투어에서 아시아 최초로 신인상을 차지한 임성재도 선행 대열에 동참할 것으로 알려졌다. 꿈나무 골퍼 샷 대결과 경매 행사 등도 진행한다. 자선금과 행사 수익금 등은 주니어 골퍼 육성과 불우이웃돕기에 사용된다. 몇 년 전 최경주는 이 행사에서 턱시도 차림으로 직접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김종안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 대표는 “얼마전 최 프로를 만나보니 본인의 성공 보다는 후배 프로 선수들 걱정을 많이 하면서 자신보다 더 잘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고 말했다.
국내 일정을 마친 뒤 최경주는 PGA투어에 복귀해 멕시코 마야코바 클래식과 RSM클래식에 2주 연속 출전할 예정이다. 올해 일정을 마무리한 뒤에는 재단에서 육성하는 주니어 골퍼들과 해외 전지훈련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최경주는 10년 넘게 자신의 메인스폰서였던 SK텔레콤과도 재계약에 합의해 계속 한 배를 탈 전망이다.

아빠처럼 골프 선수의 길을 걷고 있는 두 아들과 카메라 앞에 나선 최경주. 최경주 SNS
아빠처럼 골프 선수의 길을 걷고 있는 두 아들과 카메라 앞에 나선 최경주. 최경주 SNS


최경주는 가족 사랑으로도 유명하다. 2남 1녀를 둔 그는 아이들의 성장에 중요한 시기라며 한동안 투어 생활을 중단하고 집에서 가장 역할에 집중하기도 했다. 최경주가 가정교육에서 지키는 두 가지 철칙이 있다고 소개한 적도 있다. “아이들과 있을 때 TV를 보지 않고 대화를 한다. 아이들보다 먼저 잠자리에 들지 않는다.”
최경주의 둘째 아들 강준 군(16)은 올해 8월 미국 텍사스주에서 열린 미국주니어골프협회(AJGA) 전국대회에서 우승하며 아버지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주목 받았다. 최경주는 “강준이 공도 멀리치고 골프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다. 오히려 의욕이 너무 강해 멀리 보고 천천히 가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해준다”고 전했다. 그는 또 “학생 때는 공부도 중요하다. 내 아이 뿐 아니라 10대 주니어 선수들을 만날 때마다 자주 하는 조언이다”고 말했다.
최경주의 애창곡이 가수 남진의 히트곡인 ‘빈잔’이라는 건 널리 알려졌다. 그가 이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는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골프장 안팎에서 여전히 열정적으로 전진하는 최경주의 모습을 보니 그의 잔은 늘 비워져 있는 듯 보였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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