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두산과 키움의 한국시리즈 4차전. 두 팀이 9-9로 팽팽하게 맞선 10회초 2사 3루에서 대기 타석에 선 오재일은 한 차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시리즈 MVP에 대한 욕망이 머릿속을 스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욕심이 앞섰다가 헛스윙으로 물러났던 순간들이 떠오르면서 그는 이내 생각을 바꿨다. 마음을 비우려 호흡을 고른 뒤 타석에 섰다. 결과는 우익수 오른쪽으로 빠져나가는 결승 2루타.
“중요한 순간에 ‘영웅 스윙’(장타를 노리고 크게 휘두르는 스윙)이 나오면 큰일이잖아요. 욕심을 버리려고 노력했죠.”
한국시리즈 MVP 오재일은 이번 시즌 두산 타선에 던져진 의문을 말끔히 지운 선수다. 두산은 포수 양의지가 자유계약선수(FA)로 팀을 떠난 가운데 시즌 초반엔 4번 타자 김재환도 부진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지난해 26홈런으로 타선에 무게를 더한 최주환까지 부상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타선의 중심을 잡은 이는 오재일이었다. 공인구 교체로 인한 투고타저의 흐름 속에서도 오재일은 타율 0.293 21홈런 102타점으로 자신의 시즌 최다 타점을 기록했다. 4년 연속 20홈런-80타점 이상을 기록하며 꾸준함도 입증했다.
‘슬로 스타터’로 유명한 오재일은 올해도 3월 타율이 0.160까지 떨어졌다. 지난해에도 전반기 내내 타율이 2할대에 머물며 극심한 부진을 겪은 그다. 오재일은 “작년에는 안 되는 만큼 연습을 더 많이 해서 극복하려고 했는데 그게 오히려 독이 됐다. 올해는 마음을 편하게 갖고 가족들과 대화를 많이 했다. 성적을 빨리 끌어올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던 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한국시리즈 4경기에서 타율 0.333 1홈런 6타점을 기록한 오재일은 1차전 끝내기 안타로 전체 우승 판도를 좌우할 귀중한 첫 승을 가져왔다. 2016년 NC와의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도 끝내기 희생플라이를 기록했던 오재일은 KBO리그 역사상 유일하게 한국시리즈에서 끝내기를 두 차례 기록한 선수가 됐다. 지난해 SK와의 한국시리즈에서 16타수 2안타(타율 0.125)의 부진을 날려버린 활약이었다. 그는 “올해 한국시리즈에 대비하면서 작년 생각이 자꾸 나더라. 준비하는 동안 계속 ‘잘할 수 있다’고 되뇌었다”고 말했다.
최근 오재일은 프리미어12 무대에 선 두산 선수들의 활약을 중계로 지켜보고 있다. 한국 대표팀에는 7명의 두산 선수들이 승선했다. 그는 “국제무대에서 동료들이 잘하는 모습을 보면 기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나도 함께했으면 좋았겠지만 열심히 하다 보면 또 기회가 있지 않겠나”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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