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세스(process)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일이 처리되는 경로나 공정’이다. 쉽게 말해 과정이다. 성공이든 실패든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과정이 필수다. 과정이 치밀하고 잘 짜여질수록 성공의 확률도 높아진다. 시스템, 체제 등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번 스토브리그 들어 야구팬들은 유독 프로세스를 자주 접했다. 대부분은 성민규 롯데 자이언츠 단장(38)의 입에서 나왔다. 2군 구장의 웨이트트레이닝 장비를 사는 일부터 선수 트레이드, 외국인 선수 영입전까지…. 어떤 결과의 배경을 물으면 늘 “프로세스”라는 답이 돌아온다. 팬들 사이에서는 ‘기-승-전-프로세스’라는 말까지 나왔다. 스포츠동아는 성 단장이 메이저리그(ML) 윈터미팅을 떠나기 직전 서울 모처에서 만나 프로세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프로세스 맨’이 그리는 종착지에는 지속 가능한 강팀으로 변모한 롯데가 있다.
● 프로세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대비하는 것
- 연일 인터뷰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시즌 종료 후 시상식과 행사가 이렇게까지 많은 줄은 몰랐다. 사람들 만나서 얘기 나누는 걸 워낙 좋아한다. 주목을 많이 받는 게 부담스럽지만 팬들이 롯데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납득하기만 한다면 감수해야 한다.”
- KBO리그 단장이 ML 윈터미팅에 가는 이유가 궁금하다.
“2021년 스프링캠프지를 구하는 게 가장 큰 목적이다. 여기에 외국인 선수와 코치들도 살필 계획이다. 아직 2020년 스프링캠프조차 시작하지 않았지만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그게 프로세스 아닐까.”
- KBO리그에서는 2군에서 1시즌, 미국에서도 불과 한 달만 선수로 생활했다. 단장 성민규가 선수 성민규를 보면 어떨 것 같나?
“바로 방출이다(웃음). 야구를 빨리 접길 잘했다. 실력 미달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못하는 선수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멘탈 케어를 강조하는 것이다. 사람은 잘하는 일을 할 때 자신감이 나온다. 시카고 컵스 스카우트로 있을 때 업무가 적성에 맞아 자신감이 생겼다. 지금 단장 일도 마찬가지다.”
아무 것도 보여준 게 없던 성 단장의 이미지가 한 번에 바뀐 건 한화 이글스와 트레이드였다. 롯데와 한화는 11월 2대2 트레이드에 합의했다. 롯데 투수 장시환과 한화 포수 지성준이 ‘코어’였다. 2년간 롯데를 괴롭혔던 안방 문제 해결의 숨통은 틔운 거래였다.
성 단장은 9월 부임 직후 팀 내 포수군 및 향후 5년 안에 프리에이전트(FA)로 풀릴 안방 자원들을 분석했다. 여기에 각 팀별로 30인 외 선수들 리포트를 작성했다. 이들 중 2차드래프트에서 풀릴 자원이 있다고 판단했다. 여러 구단과 트레이드 카드를 맞춰봤고 실패를 맛보기도 했다. 이런 모든 과정이 결국 지성준 한 명을 얻기 위한 프로세스였다고 설명한다.
- 아직까지는 찬양 여론 일색이다.
“개막 후 5연패만 해도 금세 달라지지 않을까(웃음). 지성준 트레이드와 외국인 선수(딕슨 마차도, 애드리안 샘슨) 영입으로 시간을 벌었을 뿐이다. 당장 성적이 나지 않더라도 팬들이 납득할 변화를 만들겠다.”
● 프로세스, 단장 한 명이 팀을 나가도 유지되는 시스템
- 롯데 감독만큼이나 단장도 ‘독이 든 성배’ 아닐까.
“롯데만큼 팬층이 두터운 구단이 어디 있나. 그룹지원도 1등이다.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님을 만난 적이 있는데 야구에 대한 열정과 해박한 지식에 놀랐다. 2군에 엄청난 돈을 투자하는 것도 지원 덕분이다. 강팀이 될 기본 조건은 이미 갖춰졌다. 다만 프로세스가 부족했을 뿐이다. 장기적 강팀으로 군림하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게 매년 당연하도록 만들고 싶다. ‘원년 구단’이라는 전통만 가진 팀이 아니라 전통과 실력을 겸비한 팀 말이다.“
- 부임 이후 3개월이 지났다. 가장 큰 성과는?
“상동 마무리캠프를 통해 선수들의 수비력과 체력이 보강됐다. 오전 8시부터 훈련을 시작했으니 선수들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프로다운 몸 관리를 시작한 것이다. 누군가는 ‘미국식을 기대했더니 북한식 훈련이 시작됐다’고 했는데 사실 이게 ML의 방식이다. 선수단의 프로정신이 갖춰진 게 소득이다.”
김종인 사장은 성 단장에게 “쭉 살펴보니 전임 단장들은 망치로 못을 박던 도중 팀을 떠났다. 애매하게 못이 남아있으니 후임자가 빼지도, 마저 넣지도 못하는 상황이 반복됐다”며 “끝까지 망치를 내리쳐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성 단장이 바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비록 자신의 임기(3년) 동안 우승이나 한국시리즈 진출 등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할지언정 단장 한 명이 빠졌을 때 공백이 없을 만큼 프로세스를 갖추는 게 목표다. 극단적인 예로 자신의 임기 3년 내내 꼴찌를 해 팀을 떠난 뒤 롯데가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한다면 결국 프로세스의 성공이기에 만족한다고.
누군가에게는 ‘봉이 김선달’,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갓로세스’. 아직 성 단장의 프로세스는 어떠한 결과도 도출하지 못했다. 판단은 이르지만 어느 쪽으로든 롯데가 변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 프로세스는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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