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당 144경기… 선수는 지치고 팬들은 지겹고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16일 03시 00분


[위기의 프로야구, 바꿔야 산다]
<1> 경기력 저하→관중 감소 악순환

롯데가 안방으로 쓰는 부산 사직구장은 한때 한국에서 야구 열기가 가장 뜨거운 곳이었다. 구장을 가득 메운 팬들이 한목소리로 ‘부산 갈매기’를 열창해 ‘세계에서 가장 큰 노래방’으로도 불렸다. 하지만 롯데가 최하위로 추락한 지난해 이곳을 찾은 관중은 67만 명으로 2009년 138만 명의 절반이 안 됐다. 사진은 관중석이 텅 빈 사직구장의 모습. 김민성 스포츠동아 기자 marineboy@donga.com
롯데가 안방으로 쓰는 부산 사직구장은 한때 한국에서 야구 열기가 가장 뜨거운 곳이었다. 구장을 가득 메운 팬들이 한목소리로 ‘부산 갈매기’를 열창해 ‘세계에서 가장 큰 노래방’으로도 불렸다. 하지만 롯데가 최하위로 추락한 지난해 이곳을 찾은 관중은 67만 명으로 2009년 138만 명의 절반이 안 됐다. 사진은 관중석이 텅 빈 사직구장의 모습. 김민성 스포츠동아 기자 marineboy@donga.com
《한국 프로야구가 위기다. 2017년 840만 관중을 동원하며 900만 시대를 예고했지만 지난해 오히려 728만 명으로 쪼그라들었다. 새 구장 효과로 전년 대비 관중이 늘었던 NC가 없었다면 자칫 600만 명대로 추락할 뻔했다. 팬들을 민망하게 하는 수준 이하의 플레이, 잊을 만하면 터지는 선수들의 일탈, 슈퍼스타의 부재…. ‘국민 스포츠’에서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적신호가 켜진 한국 야구의 현실을 진단하고 향후 나아갈 길을 모색한다.》

728만6008명.

지난해 야구장을 찾은 관중 수다. 2017년 역대 최다인 840만688명의 관중을 기록했지만 2018년에는 807만3742명으로 800만 명에 턱걸이했다. 그리고 1년 만에 관중 수는 더욱 떨어졌다. 2016시즌 처음 열었던 관중 800만 시대가 3시즌 만에 마감된 것이다.

흥행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2018시즌을 앞두고 10개 구단 감독들은 현행 팀당 144경기씩 치러지고 있는 경기 수에 대한 개선을 요구했다. 두산 김태형 감독은 “경기 수 조절이 필요하다”며 “외형이 아닌 내실을 다질 때다. 경기 수를 줄이면 리그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현장의 목소리는 시즌 시작과 함께 유야무야됐다. 한국 야구의 침체를 경기 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최근 국제대회에서의 부진, 달라진 팬들의 놀이문화 등 다양한 요소가 결합돼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과다한 경기 수로 인한 야구 수준의 질적 저하가 심각하다고 입을 모은다.

○ 해외 토픽감 플레이 속출

팀당 144경기를 치르는 현행 방식은 9구단 NC, 10구단 KT가 리그에 참여한 2015년부터 시작됐다. 도입 당시부터 선수 수급을 감안하지 않은 외형적인 확대에 따른 리그 수준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한국야구위원회(KBO)와 각 구단은 “파이를 키우고 나면 서서히 적응할 것”이라며 이를 강행했다. 지난해까지 5시즌 동안 동일한 경기 수를 유지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어 보인다.

미국 메이저리그는 팀당 162경기를 치른다. 4000개 가까운 고등학교에서 선수들을 배출하는 일본프로야구는 143경기를 한다. 80개 안팎의 고교 야구 저변을 가진 KBO리그가 일본보다 1경기 많다. 단기간에 좋은 선수가 나오기 쉽지 않은 구조다.

현장에서는 한 시즌을 정상적으로 치르는 것조차 버거워한다. 한 팀은 선발 투수 5명이 필요한데 5선발은커녕 제대로 된 4선발도 없는 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선발이 무너지면 중간계투진의 피로가 가중된다. 악순환 속에 주전 선수들은 부상에 쉽게 노출된다. 부상 병동이 된 팀은 일찌감치 경쟁에서 밀려난다. 지난해 KBO리그의 악재 중 하나였던 전력 양극화는 이렇게 발생했다. 사정이 이러니 평범한 뜬공을 머리에 맞는 선수, 잡담을 하다가 아웃되는 선수 등도 등장했다. 해외 토픽감이다.

○ 딜레마에 빠진 한국 야구

“경기 수가 줄면 리그 수준이 확 올라갈까요? 전혀 그렇지 않을 겁니다.” 한 야구 관계자는 경기 수 축소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KBO와 각 구단은 144경기를 유지하자는 기류가 강하다.

이 관계자는 “144경기는 가장 공정한 시스템이다. 안방 팀과 방문 팀이 8경기씩 치른다. 만약 팀당 135경기를 치러야 한다면 한 팀이 유리해진다”고 말했다.

마케팅면에서도 영향이 크다. 중계권료와 입장 수입이 구단의 주 수익원인데 경기 수가 줄면 수익도 준다. 잠실구장의 경우 한 경기당 입장 수입은 2억 원 내외다. 중계권료 역시 하락할 수 있다. 이들은 144경기를 유지하면서 리그의 질적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KBO와 각 구단은 현재 27명 등록, 25명 출전인 엔트리를 한 명씩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경기당 3명 등록, 2명 출전인 외국인 선수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의 협조를 얻어 3명 출전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한 수도권 구단의 단장은 “KBO리그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경기 수를 줄이자니 감당해야 할 게 너무 크고, 유지하자니 경기력을 높일 뾰족한 수가 없다”고 말했다.

○ 모든 가능성 열어두고 해답 찾아야

경기 수 축소가 반드시 리그 축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KBO리그는 2000년대 초반 외환위기 여파 등으로 급격히 위축된 적이 있다. 1995년 540만 명이던 관중은 2004년 233만 명까지 줄었다.

당시 KBO는 2005년부터 전년도 팀당 133경기였던 경기 수를 126경기로 줄였다. 그래도 관중은 338만 명으로 100만 명이나 늘었다. 이후 2006년 초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의 선전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등의 호재가 더해지며 한국 야구는 르네상스를 맞았다. KBO는 2009년부터 팀당 경기 수를 133경기로 환원시켰다. 다시 기로에 선 한국 야구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해답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최준서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는 “미국 일본에 비해 선수 자원이 부족하다. 야구의 핵심인 ‘경기력의 질’을 높이려면 경기 수를 줄여도 될 것 같다. 관중이 조금 감소해도 객단가를 높이면 총수입과 팬 만족도는 더 높아질 수 있다. 중요한 건 ‘매력적인 상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욱상 한국체대 교수는 “재미있는 경기에는 관중이 몰리기 마련이다.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헌재 uni@donga.com·강홍구 기자
#kbo#프로야구 관중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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