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프로배구 남자부 팬 사이에서 가장 ‘갑툭튀’한 이름은 단연 황동일(34·현대캐피탈)이었습니다.
황동일은 18일 2019~2020 V리그 인천 방문 경기 때 선발 세터로 코트에 나서 현대캐피탈이 대한항공을 3-1로 물리치는 데 앞장섰습니다.
황동일이 선발 세터로 출전한 건 지난해 6월 현대캐피탈에 합류한 뒤 이날이 처음이었습니다.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은 경기 후 “황동일이 우리 팀에 거의 적응을 마쳤다고 생각해 과감하게 (선발로) 투입했다”면서 “황동일의 예측 불허 토스(세트)에 놀랐다. 오늘 컨디션이면 앞으로도 충분히 선발로 나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 재미있는 ‘백업’ 황동일
사실 황동일은 적어도 올 시즌에는 참 ‘재미있는’ 백업 세터였습니다.
남자부 각 팀에서 세트를 두 번째로 많이 기록한 선수 가운데, 본인이 공을 띄웠을 때 공격수가 기록한 공격 효율이, 세트를 제일 많이 기록한, 그러니까 주전 세터보다 더 높은 건 황동일 한 명뿐이었거든요.
공격 성공과 범실을 함께 따지는 공격 효율 역시 공격 성공률과 마차가지로 서브 리시브에 영향을 받습니다.
20일 현재 남자부 경기에서 리시버가 ‘리시브 정확’을 기록한 다음 공격수가 기록한 공격 효율은 0.471이지만 아닐 때는 0.277이 전부였습니다.
혹시 황동일이 세트하기 전에는 현대캐피탈 리시버 라인에서 아주 정확하게 상대 서브를 받았던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현대캐피탈 주전 세터 이승원(27)은 전체 세트 가운데 42.8%를 리시브 정확 이후에 기록했고 황동일은 42.1%로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서브 리시브 지원을 받지 못한 이원중(25)이 ‘나는 억울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승원은 그럴 계제가 아닙니다.
●스피드 배구 + 몰방(沒放) 최적화?
이승원과 황동일이 공을 띄웠을 때 공격 효율 차이를 만든 제일 큰 원인은 ‘오픈 공격’이었습니다.
황동일 세트 때 현대캐피탈 공격수가 남긴 오픈 공격 효율은 0.292로 이승원 세트 때 0.211보다 38.4% 높았습니다.
퀵오픈 효율도 황동일 0.506, 이승원 0.414로 22.2% 차이였습니다.
황동일이 이렇게 오픈 공격 효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건 오픈 공격을 잘 쓰지 않기 때문.
황동일은 전체 세트 가운데 19.5%를 높이 높이 띄웠는데 이승원은 26.7%로 황동일보다 오픈 공격 점유율이 36.9% 높았습니다.
대신 황동일은 후위 공격(백어택)과 속공을 이승원보다 더 많이 썼습니다.
이상을 종합하면 재미있는 결과가 나옵니다.
황동일은 소위 ‘스피드 배구’의 대표 공격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 퀵오픈을 이승원과 비슷한 비중으로 활용하면서 효율은 높게 유지합니다.
그리고 속공을 더 많이 씁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빠른 공격’을 선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외국인 선수 다우디(25·우간다)가 합류한 뒤에는 황동일의 전체 세트 가운데 52.5%가 다우디의 백어택으로 이어졌습니다.
같은 기간 이승원의 세트 가운데는 44.7%가 다우디의 백어택 시도로 끝이 났습니다.
외국인 선수 백어택은 ‘몰방 배구’를 상징하는 공격 스타일.
그렇다면 황동일은 두 가지 스타일에 모두 장점이 있는 걸까요?
황동일이 어떤 선수하고 호흡이 잘 맞는지 따져 보면 힌트를 좀 얻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 영석이는 내 친구
현대캐피탈 공격수 가운데 황동일과 제일 호흡이 잘 맞는 선수는 단연 센터 신영석(34)입니다.
신영석은 황동일과 호흡을 맞출 때 공격 효율이 제일 높은 건 물론이고 이승원 세트 때와 차이(0.157)도 제일 큽니다.
사실 시즌 전체 기록을 놓고 보면 황동일이 가장 많이 시도한 공격 유형은 신영석의 속공(13.1%)이었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황동일과 신영석은 경기대 동기동창 사이입니다.
다우디 역시 황동일이 띄운 공을 때릴 때 공격 효율이 이승원이 세터일 때보다 0.120 높았습니다.
박주형(33)도 이승원보다 황동일과 호흡이 더 잘 맞는 케이스.
반면 1986년생 경기대 삼총사 가운데 한 명인 문성민(34)은 황동일보다 이승원과 호흡이 더 잘 맞았습니다.
신영석과 대각에 서는 최민호(32)도 이승원이 세터일 때 공격 효율이 더 좋았습니다.
전광인(29)은 이승원 세트를 받아 때렸을 때 0.381, 황동일 공을 때렸을 때 0.379로 꾸준했습니다.
물론 이런 차이가 전부 세터와 공격수 사이 호흡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문성민과 최민호가 유독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만 황동일이 코트 위에 서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표본 차이가 많이 납니다.
이승원은 이날까지 총 1263번 공격수를 향해 공을 띄웠는데 황동일은 23.9% 수준인 302번이 전부입니다.
● 아직까지는 ‘깜짝 활약’
최 감독은 황동일을 주전 세터로 내세운 이유에 대해 “이승원의 세트 패턴을 다른 팀이 많이 읽고 대비를 한 상태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니까 황동일이 몇몇 기록에서 이승원보다 나은 모습을 보이는 건 ‘상대 팀에서 아직 분석을 덜 한 덕분’인지 모릅니다.
거꾸로 말하면 황동일에게는 여전히 초심이 중요합니다.
황동일이 프로배구에서 가장 ‘공격 본능이 충만한 세터’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어떻게 보면 실력이라는 게 별 게 아닙니다. ‘깜짝 활약’을 반복하면 그게 실력이 되는 법입니다.
최 감독은 “(황동일이) 오늘 잘했지만 자만하지 않게 해줘야 한다”면서 “처음 우리 팀에 왔을 때처럼 계속 제로(0)에서 시작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습니다.
황동일도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오늘 한 경기로 (최 감독님께서) 만족하실지 잘 모르겠다. 나는 오늘만을 기다렸고 오늘을 위해 연습을 했고 마음가짐을 다르게 가졌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다음 경기는 선발이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 팀이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그걸로 만족한다”고 몸을 낮췄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21일 안방 경기 때 최 감독이 선택할 현대캐피탈 선발 세터는 누가 될까요?
분위기를 이어서 황동일? 아니면 역시 최승… 아니 이승원?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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