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태국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예선을 통과, 3회 연속 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게 된 여자배구계에는 ‘김연경이 있을 때 메달을 노려야한다’는 인식이 암묵적으로 깔려 있다. 이재영, 이다영, 김희진, 양효진 강소휘 등 후배들이 급성장하며 전체적인 팀 전력이 크게 상승했으나 그래도 ‘세계적인 수준’에 있는 에이스의 존재 유무는 큰 차이다.
지켜보는 이들보다 간절한 사람은 당연히 김연경이다. 어느덧 32세가 된 김연경은 도쿄행 티켓을 따낸 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도쿄올림픽만 기다려왔다. 마지막 도전을 할 기회가 마련돼 기쁘다”면서 “후배들이 많이 성장했다는 것을 또 느끼고 있다. 예감도 좋고 욕심도 많이 난다”는 말로 도전 의지를 밝혔다.
여자배구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동메달 이후 44년 만에 다시 메달을 노린다. 김연경과 함께 2012 런던 올림픽 4위, 2016 리우 올림픽 8강 등 아쉽고도 좋은 성적을 거둔 여자배구대표팀으로서는 ‘여제’와 함께 하는 마지막 대회를 놓칠 수 없다. 그래도 여자배구는 본선이라도 꼬박꼬박 나간다. 여자축구는 더 간절하다.
남자축구가 9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에 성공한 것과 달리 여자축구는 지금껏 단 1번도 올림픽 무대에 오른 적이 없다. 올림픽 본선에 나서지 못할 수준은 아니나 북한, 일본, 중국 등 여자축구계 강호들이 아시아에 포진한 까닭에 예선에서 늘 고배를 마셨다.
2020년 도쿄올림픽 예선도 쉽지는 않은 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래도 큰 돌부리가 하나 제거됐다. 북한이 참가하지 않는다. 절호의 기회다. 어쩌면 ‘지메시’ 지소연(29·첼시)과 함께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더더욱 놓칠 수 없는 찬스다.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본선 진출에 도전하는 한국 여자축구가 아시아 예선 조별리그 첫 경기를 산뜻한 승리로 마무리했다. 콜린 벨 감독이 이끄는 여자축구대표팀은 지난 3일 오후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축구 아시아 최종예선’ 조별리그 A조 1차전에서 미얀마를 7-0으로 완파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한국의 우위가 예상됐던 경기다. 한국 여자축구의 FIFA 랭킹은 20위고 미얀마는 44위. 까다로운 팀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첫 경기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고전할 수도 있었는데 내용도 결과도 모두 만족스러웠다. 수훈갑은 단연 지소연이었다.
지난해 12월 동아시안컵에 참가하지 않아 콜린 벨 감독 체제 하에서는 첫 부름을 받은 지소연은, 오랜 기간 벨 감독의 애제자였던 것처럼 핵심 퍼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지소연은 전반 5분 만에 넣은 PK 선제골을 시작으로 2골2도움을 기록, 대승의 견인차가 됐다.
가시적인 공격포인트가 아니더라도 지소연은 소위 ‘레벨이 다른’ 플레이를 경기 내내 펼쳤다. 2명의 전방 공격수 아래서 사실상 ‘프리롤’ 역할을 맡은 지소연은 중앙과 측면, 1선과 2선을 자유롭게 오가면서 공격의 단초이자 연결고리이자 마침표까지 1인 다역을 소화했다. 미얀마의 수비력이 그리 강하지 않아 냉정한 평가는 어렵지만, 차이는 확실히 느껴졌다.
지소연을 앞세운 여자대표팀은 오는 9일 베트남과 같은 장소에서 두 번째 경기를 갖는다. 이 경기만 승리하면 한국은 A조 1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애초 한국은 북한, 미얀마, 베트남 등 3팀과 함께 조별리그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북한이 불참을 결정함에 따라 미얀마, 베트남하고만 조별리그를 치른다. 호재다. 하지만 A조 1위가 본선행을 보장하진 않는다.
예선은 B조에서도 진행되고 있으며 A조 1위와 B조 2위, A조 2위와 B조 1위의 홈&어웨이 PO에서 승리한 2팀만 본선에 오를 수 있다. B조는 호주와 중국의 진출이 유력한데, 결국 한국의 첫 올림픽 진출 여부는 PO에서 판가름 될 예정이다. 그래도 북한이 나서지 않아 1위로 PO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아무래도 호주보다는 중국이 해볼 만하다.
하늘이 돕는(북한 불참)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지소연 때문이다. 1991년생인 지소연은 어느덧 29세가 됐다. 워낙 동안이라 인식하지 못할 뿐 손흥민(28)보다 누나이고 서른 줄을 훌쩍 넘어서는 차기 올림픽은 출전을 보장하기 힘들고, 나서더라도 아무래도 힘이 떨어졌을 때다. 전성기인 지금이 절호의 찬스다.
한국 스포츠계가 보유하고 있는 ‘월드스타’ 중 하나인 지소연인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올림픽에 꼭 나가고 싶다”는 뜻을 번번이 밝혀왔다. 여자축구 사상 첫 외국인 지도자가 부임하며 전체적으로 ‘한 번 해보자’는 기운이 강하다. 여자축구는 숙원을 풀 수 있을까. 적어도 지소연은 김연경 이상으로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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