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 리시브가 안 되니 세터가 하이볼 오픈으로 올려줄 수밖에 없고 오픈 공격하면 당연히 블로킹 따라오지 이걸 분석 기사라고…”
한 독자 분께서 2월 13일자 동아일보 지면에 나간 기사 <7연패 삼성화재, 공격수 살릴 세터가 필요해>에 남기신 의견입니다.
이 기사는 삼성화재 김형진(25)이 프로배구 남자부 7개 팀 주전 세터 가운데는 가장 상대 블로킹을 여는 재주가 떨어진다고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같은 기사에 이런 의견을 남긴 분도 계셨습니다.
“이게 다 서브 리시브가 안 되는 탓입니다. 결국 리시브가 잘 되는 우리카드나 대한항공이 세트 플레이를 하기가 좋으니 블로커들이 따라다니기 힘든 거고, 리시브가 안 되는 삼성화재는 결국 오픈 위주의 공격을 하다 보니 블로커들이 다 따라다니는 것임.”
두 의견을 보고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이미 5일자 지면에 <‘불난 집’ 삼성화재, 송희채를 어쩌나> 기사를 쓰면서 당시 5연패에 빠져 있던 삼성화재에 (서브 리시브를 책임져야 하는) 레프트 교통정리가 필요하다는 배구계 의견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 기사에는 이런 의견이 달렸습니다.
“그냥 뻔히 보이는 오픈 세트(토스)만 주야장천해대니 상대 입장에선 블로킹하기 얼마나 쉽겠냐.”
그래서 세터 쪽 분위기도 전했는데 독자 분들은 서브 리시브 문제를 지적하신 겁니다.
온라인 기사와 달리 지면 기사는 분량 제한이 심해서 한 번에 한 주제만 다뤄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이유로 기사를 따로 따로 쓰는 바람에 ‘서브 리시브에는(또는 세터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세터만(또는 서브 리시브만) 문제라고 이 기자가 분석했다’고 생각하시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두 번째 이유는 ‘서브 리시브 타령’이 18번 레퍼토리인 감독이 너무 많다 보니까 팬들마저 그렇게 믿고 계신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배구에서 서브 리시브는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흔히 생각하시는 그 정도는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상대 블로킹을 열 때는 확실히 그렇습니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2016~2017 시즌 V리그부터 공식적으로 상대 블로커 숫자를 집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즌부터 지난(2018~2019) 시즌까지 팀별 리시브 성공률과 상대 블로커가 1명 이하(0명 또는 1명)인 비율 사이 관계는 아래 그림처럼 나타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좀 어려운 말씀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두 기록 사이 상관관계를 계산해 보면 유의확률(p값) 0.4244에 가로막힙니다.
유의확률이 0.4244라는 건 이 실험을 100번 했을 때 42번 정도는 리시브 성공률과 상대 블로커가 1명 이하일 때 비율 사이에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요즘에는 논란이 많지만) 관행적으로 p값이 0.005 이하일 때 계산 결과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다고 해석합니다.
예를 들어 프로야구에서 OPS(출루율+장타력)가 높을수록 경기당 평균 득점도 높을 겁니다. 이때 OPS와 평균 득점 사이 상관관계를 계산하면 p값은 0.00000000000000022가 나옵니다.
따라서 서브 리시브가 흔들려서 상대 블로커 숫자를 줄이기 어렵다는 의견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습니다.
사실 김형진이 바로 반대 사례입니다.
삼성화재는 2017~2018 시즌 서브 리시브 성공률 1위(44.0%)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김형진이 상대 블로커를 1명 이하로 만들어 세트한 비율은 19.7%로 각 팀 주전 또는 첫 번째 백업 세터 가운데 가장 낮았습니다.
서브 리시브가 흔들려서 오픈 위주로 공격을 한다는 의견도 역시 통계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서브 리시브 성공률과 오픈 공격 점유율 사이 상관관계를 알아보면 p값 0.2019가 나옵니다.
단, 삼성화재는 이 의견에 따라 플레이하는 팀입니다.
삼성화재는 2016~2017, 2018~2019 시즌에는 전체 공격 시도 가운데 43.6%가 오픈 공격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서브 리시브 성공률 1위였던 2017~2018 시즌에는 22.9%로 이 비율이 절반 가까이 줄었습니다.
리그 전체 기록을 봐도 서브 리시브 성공률이 떨어지면 오픈 토스가 늘어난다는 의견인 사실과 거리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갈수록 리그 전체 서브 리시브 성공률은 떨어지는 추세입니다. 2009~2010 시즌 61.5%였던 이 기록은 이번 시즌 현재 38.5%까지 내려와 있습니다.
만약 서브 리시브가 흔들릴 때 오픈 공격이 늘어난다면 오픈 공격 비율이 폭발했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계속 이렇게 ‘리시브 타령’을 부정하는 결과가 자꾸 나오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서브 리시브 성패에 따라 공격 성패가 자동으로 갈렸다면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는 말도 없었을 테니까요.
그래서 ‘나쁜 서브 리시브’를 ‘좋은 공격’으로 바꾸는 세터가 좋은 세터입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게 국가대표 주전 세터 한선수(35·대한항공)입니다.
그는 이번 시즌 현재까지 서브 리시브가 흔들린 상황에서도 공격수가 공격 효율 0.356을 기록하게 한 선수입니다.
참고로 KB손해보험에 새로 합류한 마테우스(23·브라질)가 이날까지 기록한 공격 효율이 0.358입니다.
김형진은 이 상황에서 0.301을 기록하는 데 그쳤습니다.
그나마 KB손해보험 황택의(24)가 0.277밖에 되지 않아 최하위는 면했습니다.
그렇다고 서브 리시브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뜻은 물론 아닙니다.
이날까지 남자부 경기에서는 총 389세트를 소화했는데 이 중 64%(249세트)를 서브 리시브 성공률에서 앞선 팀이 가져갔습니다.
물론 삼성화재는 이 비율이 더 높습니다.
삼성화재가 서브 리시브 성공률에서 앞선 건 총 29세트이고 이 중 72.4%(21세트)를 따냈습니다.
서브 리시브에서 앞섰을 때 세트를 따낸 비율이 제일 높은 팀이 바로 삼성화재입니다.
문제는 반대 상황입니다.
서브 리시브에서 앞선 팀이 64%를 가져간다는 건 거꾸로 36%는 서브 리시브에서 뒤진 팀이 이긴다는 뜻.
삼성화재는 서브 리시브에서 뒤졌을 때 승리한 비율이 32.1%(78세트 가운데 25세트)밖에 되지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삼성화재는 전체 세트 가운데 69.2%가 서브 리시브 우위에 따라 갈립니다.
반면 1위 팀 우리카드는 이 비율이 58%가 전부고 2위 대한항공도 57.7%로 우리카드와 사실상 차이가 없습니다.
우리카드나 대한항공 두 팀 모두 세터 걱정을 하지 않는 팀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건 우연일까요?
국내 넘버1 세터 한선수와 삼성화재에 우승을 일곱 번 안긴 유광우(35)가 공격 조율을 맡는 대한항공은 리시브 성공률에서 뒤진 22세트 가운데 63.6%(21세트)는 공격 효율이 앞선 채 경기를 마쳤습니다.
삼성화재는 이 비율이 대한항공 35.9%밖에 되지 않습니다.
참고로 리그 평균은 39.8%.
서브 리시브가 흔들려도 다섯 번 중 두 번은 공격 효율에서 앞설 수 있다는 뜻입니다.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서브 리시브가 안 되면 아무 것도 못하는 이유는 서브 리시브가 안 되면 아무 것도 못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삼성화재로서는 ‘몰방(沒放) 배구’ 전성시대가 그리운 게 당연하지만 이제는 트렌드가 변했습니다.
서브 리시브 라인에 포진한 모든 선수들이 어떤 상황에서든 상대 서브를 받아 자기 머리 위로 정확하게 띄운다면 여전히 세터는 참 편하게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그냥 높게 공을 띄우면 상대 블로커 위로 스파이크를 날리는 외국인 선수가 있을 때도 세터는 참 편할 겁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기에 세터가 중요합니다.
그건 감독도 마찬가지.
인터뷰실에 들어가서 “서브 리시브가 흔들려서 졌다”고 인터뷰하라고 구단이 감독에게 연봉을 주지는 않을 겁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승리를 따낼 수 있는지 우리 팀에 맞는 방법을 찾아내 달라는 게 구단이 감독에게 연봉을 주는 이유입니다.
삼성화재는 18일 전통의 라이벌이자 이번 시즌 리시브 성공률 1위(43%) 현대캐피탈과 ‘V 클래식 매치’를 치릅니다.
이 경기 결과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이기면 이긴 대로 또 지면 진대로 신진식 삼성화재 감독이 그 이유를 ‘서브 리시브’에서 찾는다는 데 500원 겁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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